작성일 : 24-05-27 19:49
신앙의 슬럼프를 회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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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998  

신앙의 슬럼프를 회복하라

 

(딤후 1:1-14)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3.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 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침체(沈滯)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현상이나 사물이 진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무름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이 용어는 경기침체나 장기침체, 부동산 경기침체, 주택경기침체와 같이 경제적인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말이 슬럼프입니다. 이 말도 경제용어로도 사용되지만 그래도 제일 많이 사용되는 것이 운동경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선수가 슬럼프에 빠져서 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수가 슬럼프에 빠지면 그 슬럼프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그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부양책이나 대책을 세우게 마련입니다. 그만큼 침체에 빠진다는 것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무서운 슬럼프가 신앙생활에서도 찾아옵니다. 성도들이 신앙의 슬럼프를 원하지는 않겠지만 어떻게 하다보면 신앙생활이 재미가 없고 활력이 사라지면서 깊은 수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에베소교회처럼 처음 사랑을 다 잃어버리고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는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지못해 신앙생활을 합니다. 

성경에 보면 영적인 침체에 빠졌던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엘리야 선지자가 아니겠습니까?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통쾌하게 승리하였던 엘리야는 이세벨이 너를 죽여 버리겠다고 하는 말 한 마디에 영적인 침체에 빠졌습니다. 

두려움에 광야로 도망간 엘리야는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절망적인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지 채 며칠이 되지 않아 이런 두려움에 빠지는 것이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엘리야 같은 신앙의 거장도 영적인 침체에 빠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쳐부수고 조카 롯을 구하여 온 이후에 영적인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그들이 언제 자기를 치러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그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위로하시고 다시금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디모데도 이런 신앙의 슬럼프에 빠져 있었습니다. 6절에,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나게 하노니” 이 말씀을 보면 디모데는 지금 하나님의 은사를 활용하지 못하고 사장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목회자로서 열심을 내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주님의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이렇게 영적인 침체에 빠졌으니 그가 섬기는 교회는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침체에 빠졌겠습니까? 이렇게 영적인 침체에 빠진 디모데를 다시 회복시키고 맡겨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바울 사도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편지를 써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영적 침체를 경험하고 슬럼프에 빠질 수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늘 기쁘고 감사한 것만은 아닙니다. 엘리야도 아브라함도 영적인 침체에 빠졌습니다. 예상치 못한 사건과 상황 앞에서 낙심하고 절망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감을 잃고 매사에 소극적이 되고 열심을 내지 못하고 맡겨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입으로는 주님을 찬양하지만 마음은 즐겁지가 않습니다. 기도하려고 머리를 숙여도 기도가 되지 않고 말씀을 듣지만 속에서는 온갖 잡념이 그의 생각을 지배합니다. 

예배를 드려도 기쁨이 없고 찬송을 해도 즐겁지가 않고 말씀을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신앙생활이 짜증만 난다면 그것은 깊은 침체에 빠진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침체 현상이 잠시 왔다가 곧 회복되면 다행이지만 이 슬럼프가 오래 계속된다면 그는 신앙의 심각한 위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마귀의 유혹에 빠져 데마와 같이 세상을 사랑하다가 신앙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열심이 식어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안일과 나태함에 빠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들은 언제 신앙의 슬럼프를 겪으셨습니까? 그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혹시 지금도 신앙의 슬럼프에 빠져 침체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귀찮아지고 가기 싫어지면 그런 분은 영적인 슬럼프에 빠진 것입니다. 맡겨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핑계만 대는 것도 슬럼프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이런 신앙의 침체를 극복하고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열심히 맡겨준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금 성령의 불을 붙여 뜨겁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불을 붙여 뜨거운 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불이 붙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 안에 불씨가 있어야 합니다. 

내 안에 불씨가 있을 때 바람을 불어 살릴 수도 있고 기름을 부어 불이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습니다. 불씨조차 없으면 그 불을 타오르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불씨를 먼저 발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 안에 있는 불씨를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디모데에게는 눈물이 있었습니다. 디모데의 눈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바울은 그 눈물을 생각할 때 디모데가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눈물이 있는 디모데를 볼 때 넘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 눈물은 주님을 사랑하기에 흘렸던 눈물일수도 있고요, 성도들을 사랑하는 눈물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디모데의 모습이거나 아니면 안수할 때 흘렸던 뜨거운 사명의 눈물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눈물이 말랐지만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디모데의 모습을 생각할 때 그것은 분명한 불씨가 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디모데에게는 거짓 없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것이 디모데에게 계승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얼마나 거짓된 믿음이 많이 있습니까? 믿는 모습을 보이는 이는 많지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진실한 믿음, 거짓이 없는 참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훌륭한 믿음의 조상들을 통하여 받은 거짓 없는 참된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또한 바울이 안수할 때 받은 은사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볼 때 그것들이 디모데 안에 있는 불씨였습니다. 여러분, 디모데가 영적인 슬럼프에 빠져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믿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은사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은사가 없어진 것도 아니고 눈물이 없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그것이 바로 믿음의 불씨가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있었기에 디모데는 다시 불붙을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침체에 빠졌다고 너무 절망하지 마시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믿음에 대하여 파선한 자나 하나님께 버림받은 희망이 없는 자가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갈 하나님의 택함 받은 제사장들입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있고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믿음의 불씨가 있고 그 불씨가 있기에 여러분들은 다시 불붙어 활활 타오를 수 있습니다. 

다시 불붙이게 하기 위해 여러분 안에 있는 그 불씨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항존직으로 안수 받을 때의 각오와 눈물을 다시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충성하기를 다짐하며 눈물을 흘리고 기도했던 순간을 회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실로암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불씨를 찾았으면 그 불씨를 바람으로 불거나 아니면 기름을 부어서 불씨가 살아나고 불길이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바람이요 성령의 기름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보다도 모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바울의 표현대로 보자면 그 자리에 있었던 제자의 수가 500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날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였던 사람들은 120명 정도였습니다. 나머지 380명 정도는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성경이 알려주지 않으니까 그들이 어디에 갔는지 왜 함께 모이지 않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여러분, 정말 중요한 것은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만이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았고 그들이 초대교회의 귀한 일꾼들로 쓰임 받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모이지 않았던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지 못하였고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성경은 전혀 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찬양할 때 거기에 성령의 불이 임하게 됩니다. 모이지 않으면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제자들이 큰 두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잘 한 것은 제자들이 흩어지지 않고 모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던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하였고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해도 도마는 그 말을 전혀 믿을 수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당시 침체에 빠져 있던 교인들을 향하여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권면하였습니다. 신앙이 슬럼프에 빠지면 자꾸만 모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배에 빠지고 기도자리에 빠지고 성도들의 교제자리에 빠지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슬럼프에 빠진 증상일 뿐 아니라 그렇게 모이기를 폐하기 시작하면 정말 신앙을 회복하기가 어렵고 다시 불붙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모이기가 싫어지면 기를 쓰고 억지로라도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모이기를 힘쓰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모일 때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게 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기위하여 우리는 또한 기도해야 합니다. 

오순절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을 때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가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핍박을 받아 위험에 처했을 때 그들은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게 빌기를 다했을 때 모인 곳이 진동하고 무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도 자칫 영적인 침체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정말 일시적으로나마 슬럼프에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양하였고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시 불붙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그 성령의 역사를 위하여 우리는 먼저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를 쉬고 있었다면 다시 기도를 시작해야 하고 형식적인 기도생활을 했다면 이제 정말 뜨겁게 기도생활을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잘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억지로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혼자서 안 되면 옆에서 함께 기도하고 도와주고 서로가 협력해서 기도의 불을 붙여야 합니다. 롤란드 브라운 목사가 영국에서 집회를 가질 때 그를 좇아다니면서 무려 50번이나 설교를 들은 프랭크라는 교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이제부터 기도생활에 전념해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하루에 한 시간 두 시간 어느 때는 세 시간을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자기 마음을 늘 어둡게 하던 근심과 두려움 시기 원망의 마음이 사라지고 남에게 성을 내던 것도 사라지고, 점점 평화와 기쁨과 겸손이 그의 삶에 열매를 맺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를 통하여 가정이 변화되고 교회까지 변화되었는데 그 교회는 150년이나 된 교회인데도 교회당은 다 낡아 여기저기 부서졌지만 누구 하나 고치려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프랭크 교장이 기도로 변화되면서 교인들의 열심히 일어나고 부흥이 되면서 3년 후에는 새 교회당을 건축하는 역가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가 답인 줄 믿습니다. 신앙의 잠에서 깨어나 뜨겁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영적 침체를 극복하고, 지상명령을 준행하는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성령의 기름이 부어지기 위하여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성령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역사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들었을 때 듣는 사람가운데 성령이 임하시므로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을 때 고넬료의 집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였습니다.

감리교회를 창설했던 웨슬리 형제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성경 공부반을 조직하고 열심히 성경을 읽고 연구했습니다. 그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10명도 안 되는 학생들이 모여서 성경을 공부했을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영국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전 세계에 감리교회를 만드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의 자리에 소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가 영적인 체력을 강하게 기르지 못하면 영적 침체에 빠지기 쉽습니다.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는 신앙이 전부라면 영적으로 허약해질 수밖에 없고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신앙으로 우리의 신앙이 불타오를 수 없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말씀의 자리에 소홀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기록할 때는 로마 옥중에 두 번째 갇혀 있었을 때입니다. 첫 번째 옥중생활을 할 때는 석방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고 옥중 생활도 상당한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두 번째 감옥에 갇혔을 때 바울에게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하나님께로 가야 될 때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대신하고 내 뒤를 이어서 복음을 전하고 주의 일을 해야 될 때였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가 저렇게 침체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볼 때 바울은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아직도 할 일은 많은데, 아직도 구원해야 할 사람들은 많은데, 그 일을 해야 할 디모데가 침체에 빠져 있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디모데의 믿음을 회복시키고 열심을 회복시키고 다시 불붙는 신앙이 되게 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바울의 심정이 바로 우리 주님의 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는 주님의 심정은 지금 너무나 답답하고 안타까우실 것입니다. 내 일을 해야 하고 내 구원을 이루어야 할 자는 바로 너희들인데 지금 이렇게 침체에 빠져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 주님은 오늘 우리들을 향하여 다시 불붙게 하라고 간절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처음 사랑을 회복하시고 열심 있는 신앙생활을 하시고 슬럼프에 빠진 여러분들의 신앙을 다시 불붙여 뜨거운 신앙으로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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