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궤의 이동경로(삼상 5-6장)
실로의 회막 → 아벡(전투지) → 아스돗 다곤신전(삼상 5:3) → 가드 → 에그론 → 벧세메스 → 기럇 여아림
여호수아와 사시대에 법궤는 계속하여 실로에 머물었다. 그러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법궤를 빼앗겨 블레셋의 세도시인 아스돗, 가드, 에글론으로 이동하다 다시 기럇 여아림으로 옮겨져 20년 동안 머물게 된다. 이곳에서 다윗이 법궤를 찾기 전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잊혀진 채로 숨어 있게 된다.
후에 다윗의 여호와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 하다 실수하여 베레스가 죽게 된다. 이것을 베레스 웃사라 불렀다. 그 후 다윗은 마음이 상하여 법궤 옮겨오는 것을 멈춘다. 그러다 다시 두달 뒤에 가드의 오벧에돔에 두었던 벱궤를 레위인들에게 메도록 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인다.
사무엘하 6: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이상하다. 열왕기와 역대기 기록에 의하면 법궤는 예루살렘이 아닌 기브아 산당에 모셔져있다고 말한다. 다윗 이후에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법궤는 기브아로 옮겨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다 솔로몬의 성전이 완공되면서 법궤는 솔로몬 성전으로 옮겨진다.
기원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성전이 파괴되기까지 법궤는 이곳에 머물게 되고, 바벨론에 의해 다시 바벨론으로 옮겨진다. 그러나 그 후로는 법궤에 대한 소식이 없어진다. 후에 지어지는 스룹바벨 성전은 지성소에 법궤가 없다. 사람들은 성소에 법궤가 없기 때문에 성소로서의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된다. 이것 때문에 학개가 분연히 일어나 법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더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법궤 이동을 통해 보는 이스라엘 역사는 법궤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이스라엘의 흥망이 결정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또한 법궤를 미신처럼 다루는 것 또한 위험하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서 법궤 들어가있는 십계명이 말하듯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임재이다. 법궤를 존귀히 여김은 곧 말씀을 존귀히 여기는 것이며, 율법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가시적 법궤는 없어지고 참 법궤(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동이 불가피하다. 결국 비유로서의 법궤가 아니라 말씀 자체이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게 되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에서 이것을 더욱 분명하게 언급한다.
빼앗긴 법궤의 이동 경로
하나님은 블레셋에서 스스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신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들은 다곤이 언약궤 앞에 얼굴을 대고 절을 하듯이 엎드려 있는 것을 보게되었다. 블레셋인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우연히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고 다곤 신상을 원래 자리에 놓았다(3). 그러나 그들은 다음 날 아침에 신전에 들어가서 또 다시 다곤 신상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곤의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서 문지방에 있었고, 다곤의 몸둥이만 남아 있었다(4). 이틀 전만 해도 블레셋인들은 다곤이 승리자이고 여호와가 패배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다곤이 패배자가 되어 여호와께 경배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다곤은 블레셋인들이 보는 앞에서 지존하신 여호와께 드려진 희생 제물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블레셋인들은 이 일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호와께서 아스돗 사람들에게 독종의 재앙으로 치셨다(6). 이에 아스돗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자기들이 있는 곳에 두지 못하겠다"고 소리쳤다(7). 아스돗 사람들은 사람을 보내서 블레셋의 지도자들을 아스돗으로 오게하였다. 그리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물었다. 그러자 블레셋 지도자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드로 옮기도록 지시하였다(8).
가드는 가나안의 옛 도시였으나 여호수아에 의해 멸망되었다(수 10:36-39; 11:21-22). 여호수아 때에 이 도시의 거민들은 아낙 자손이라고 부르는 거인족이었다(민 13:33). 여호수아가 이 곳을 정복한 후에도 그들의 일부는 살아남았는데, 성경에서는 그들을 '가드 사람'이라고 불렀다(삼하 6:10-11; 15:18-19,22). 가드는 아스돗(Ashdod)의 동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성벽이 잘 갖춰진 요새였다. 여호와의 궤가 가드로 옮겨진 후에 이번에는 가드에 큰 환난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가드 성읍 사람들은 큰 자나 적은 자를 막론하고 모두 독종에 시달리게 되었다(9).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를 다시 에그론으로 옮겼다. 에그론은 아스돗의 북동쪽으로 약 20km 지점에 있던 블레셋의 다섯 성읍 중의 하나였다. 이 성은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며, 사사시대에 와서 유다 지파에 의해 정복되었다(삿 1:18).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성은 다시 블레셋의 영토가 되고 말았다. 여호와의 궤가 에그론으로 옮겨지게 되자, 이번에는 에그론에서 난리가 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에그론 성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를 원래 처소로 보내라고 아우성을 쳤다(10-11). 이와 같이 여호와의 궤가 가는 곳마다 그 성 사람들이 재앙으로 죽거나, 아니면 독종으로 고생을 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블레셋 성읍 사람들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치게 되었다(12).
* 돌아온 언약궤(6:1-7:2)
이렇게 해서 여호와의 궤는 블레셋 지방에서 7달을 지내게 되었다(1). 여기에서 "지방"(사데)이라는 말은 '들', '밭'을 의미한다. 아마도 당시에 블레셋 사람들은 저주를 두려워해서 언약궤를 사람이 살지 않은 빈들에 보관했던 것 같다. 성경에서 숫자 '일곱'이 '완전함'을 상징하는 점을 생각하면 "일곱 달"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낼 시간이 되었음을 암시해주고 있다. 블레셋 사람들은 더 이상 언약궤를 방치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제사장들과 복술 자들을 불러서 여호와의 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낼 방법에 대해서 질문했다(2). 여기에서 "제사장들"은 다곤의 의식을 집행하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복술자'(코세밈)는 작은 나무 가지들을 흔들다가 그것이 나뉘어져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점을 치던 자들이었다(민 23:23; 신 18:10). 블레셋 방백들의 재앙을 받지 않고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낼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돌려보낼 때에 그대로 보내지 말고,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에 대한 일정한 배상을 지불하고 언약궤를 돌려보내야 병도 낫고, 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린 이유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3).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실수로 타인의 소유물이나 사람을 취한 경우에 잘못 취한 물건이나 사람을 돌려보내면서 실수에 따른 보상금을 지불하는 풍습이 있었다(Klein). 그들이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라고 한 것을 보면 당시 블레셋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하나님께 무언가 잘못을 범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속건제'는 실수로 인해 하나님의 물건이나 사람의 물건을 범했을 때에 드리던 보상제사이다. 여기에 사용된 속건제는 '배상'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블레셋 술사들은 이러한 배상을 통해서 당시에 전염된 독종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블레셋 술사들은 자신들이 여호와께 배상을 드린 후에 하나님의 진노가 멈춰지면, 자신들의 죄로 인해 이러한 재앙이 내려진 것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정치 지도바들은 제사장들에게 무엇으로 손건제물을 삼아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제사장들은 블레셋 지도자의 숫자와,재앙을 내린 상태를 따라서 5개의 금 독종과 금 쥐로 손곤제물을 삼으라고 조언했다(4). 블레셋은 다섯 개의 주요 도시 국가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각 도시는 자체의 지도자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금 독종'은 여호와의 궤로 인해 블레셋에 임한 독종의 모양을 금으로 만든 것이고, '금 쥐'는 독종을 전염시킨 쥐를 금으로 만든 것이다. 블레셋 술사들의 이러한 처방은 당시 이방 문화의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고대 이방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게 어떤 소망을 빌거나, 감사를 드릴 때에 그 내용을 형상화하여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예를 들어 질병의 치료받기 원하는 자는 그 질병이 걸린 모습을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 신에게 드렸고, 난파선에서 구출된 자가 자신의 옷을 신전에 바쳤으며, 해방된 노예는 쇠고랑을 신전에 바쳤고, 승리한 검투사는 자신의 검을 신에게 바치는 경우가 있었다. 블레셋 복술자들은 이전에 애굽의 예를 들어 이 일을 속히 실행할 것을 권고했다. 그들은 이전에 애굽 왕 바로가 끝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을 내보내지 않다가 10대 재앙으로 완전히 멸망한 일을 지도자들에게 상기시켜 주었다(5-6). 하나님은 이러한 방식으로 여호와를 알지 못하던 블레셋 사람들 앛에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블레셋 복술자들은 지도자들에게 새 수레를 만들고, 멍에를 메어보지 못한 젖이 나는 소 둘을 데려다가 그 수레를 끌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여호와의 궤를 그 수레에 싣고 속건제물은 상자에 담아 언약궤 곁에 두라고 했다. 블레셋 복술 자들은 이때에 만일 그 소가 이끄는 수레가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벧세메스로 가면, 재앙을 내린 것이 여호와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일 그 소들이 그 수레를 벧세메스로 이끌고 가지 않으면 그들에게내린 재앙이 우연히 일어난 것임을 증거할 것이라고 충고했다(7-10). 여기에서 '새 수레'는 한 번도 세속적 목적을 위해 사용된 적이 없는 수레를 가리킨다. 이러한 수레는 새로 만들어야만 구할 수 있었다. 또한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소도 세속적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지 않은 소를 가리킨다(민 19:2). 젖 나는 소 는 새끼가 딸린 암소를 가리킨다. 그러면 블레셋 복술 자들은 왜 법궤를 운반할 짐승으로 이러한 암소를 택하라고 권고했는가? 블레셋 제사장들에게 있어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는 자기에게 내려진 재앙이 정말로 여호와로 인해 온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수레의 진행 방향을 보고 그 재앙의 근원을 확인하려고 했다.새끼가 딸린 암소는 그대로 두면 당연히 벧세메스로 가지 않고 자기 새끼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암소가 새끼를 두고 벧세베스로 간다면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잇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블레셋 복술자들은 새끼가 있어 젖을 물리는 암소를 법궤 운반용으로 택하도록 권고했다.
블레셋 방백들은 이러한 조언을 받아들여 젖 나는 소 두 마리로 하여금 새 수레를 이끌게 하고, 그 수레에 여호와의 언약궤와 금 독종과 금 쥐를 담은 상자를 실었다. 이때에 수레를 맨 두 암소는 울면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벧세메스를 향해 갔다. 이때에 암소가 운 것은 자기 새끼를 떠나야만 하는 슬픔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소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여호와의 궤를 벧세메스까지 운반해야만 했기에 울면서도 벧세메스로 가아먄 했다. 이때에 블레셋 방백들은 이스라엘의 경계인 벧세메스경계까지 그 암소를 지켜보면서 뒤따라갔다(11-13). 이렇게 해서 언약궤는 블레셋 땅으로 간지 일곱 달만에 다시 벧세메스로 돌아오게 되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언약궤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심히 기뻐하였다. 그때에 구 수레는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중에 큰 돌이 있는 곳에 멈추어 섰다. 이를 본 수레들은 수레의 나무를 패고, 소를 번제로 드렸다. 그리고 레위인들은 여호와의 궤와 금쥐와 금 독종을 담은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었다. 그리고 그 날 벧세메스 사람들은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블레셋의 다섯 방백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에그론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블레셋 방백들은 이를 통해서 그 동안 자기 나라에 내려진 재앙들이 여호와의 연약궤로 인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스스로 블레셋 땅에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그러나 벧세메스 사람들이 언약궤를 보다가 (오만) 칠십 명이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보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범하는 일이기 때문에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민 4:5, 6, 15-20). 그러나 벧세메스 사람들은 이를 어기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서 내부를 들여다 보고 말았다. 하나님은 언약궤를 전리품으로 취급한 블레셋을 징벌하셨듯이(5:1-2),그 궤를 세속적 구경거리로 삼은 벧세메스 사람들도 엄히 징벌하셨다(19). 이는 이방인 뿐 아니라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은 경외할 대상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오만'이라는 숫자가 괄호 안에 기록된 것은 필사자의 실수로 쓰여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인'(70)을 '눈'(50,000)으로 잘못 보았을지도 모른다(Kennicott). 후일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의 인구가 최고로 번성했을 때에 7만이엇다는 것을 생각하면 '칠십 인'이 죽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Keil, Smith, Fay). 유대의 역사가 요세 푸스 역시 이 때에 죽은 사람이 '칠십 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Antiquities, vi, 1, 4). 이로 인해 가족을 잃은 백성들은 크게 애곡하였다. 이러한 사건은 각 지역 주민들에게 큰 충격이 되고도 남았다. 그들은 이러한 징계를 통해서 "여호와의 거룩성"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설 수 있겠느냐?"고 부르짖었다. 그들은 이렇게 두려운 "여호와의 궤를 누구에게 보내야 하느냐?"고 부르짖었다(20).법궤를 경솔히 돌여다 본 범죄의 대가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벧세메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전과 같은 징계가 또 내려질까 두려워한 나머지 그 궤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려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자들을 기럇여아림에 보내어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가라고 기별하였다(21). '기럇여아림'은 '숲의 성읍'이란 뜻으로 오늘날의 '쿠르엣 엘 에납'으로 추정된다(Robinson). 당시 이 성읍은 벧세메스 북동쪽 약 145km, 예루살렘 북서쪽 약 13km지점에 있었다. 그러면 벧세메스 사람들이 왜 다른 성읍들을 제치고 하필 이면 왜 기럇여아림으로 언약궤를 보내려 했을까? 그것은 그 당시 기럇여아림의 지정학적 위치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당시 기럇여아림이나 벧세메스는 모두 블레셋의 정치적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 다윗이 르바임 골짜기를 완전히 수복시키기 전까지 이 두 성은 르바임 골짜기를 점령하고 있었던 블레셋 사람들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그러므로 블레셋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벧세메스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하여 마찬가지로 블레셋의 영향권 아래 있던 기럇여아림으로 언약궤를 보내려 했을 것이다. 그들이 기럇여아림 사람들에게 '내려오라'고 말한 것은 벧세메스가 해발 305m, 기럇여아림이 해발 762m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이러한 기별을 받고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살던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았다. 그리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그 언약궤를 지키게 하였다. 그 후 여호와의 언약궤는 다윗이 이 궤를 예루살렘에 옮길 때까지 20년 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여호와의 언약 궤가 이 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간절하게 사모하게 되었다(7:1-2).
* 법궤의 이동 경로: (참고지도)
1) 실로(여호수아-엘리 때까지)
2) 에벤에셀과 아벡의 전쟁터
3) 아스돗 - 4) 가드 - 5) 에그론(약 7개월)
6) 벧세메스
7)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이 곳에서 그 후 20년 동안 머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