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치유의 9가지 지침.
토마스 하트
우리 중 상담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자신과 그 환경을 살펴보며 그들의 길을 발견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하여 유용한 기본 원리들을 교육받아 왔다. 그러나 기술들을 배우기 전에도 우리 중 다수는 기독교적인 삶의 통찰력의 기초를 익혔으며. 또 심지어는 상당한 정도의 신학교육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여전히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치료적인 면과 신학적인 면. 이 두 가지 측면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과 상담할 때 이 양면이 모두 충분히 효과를 보게 하는 일이다.
흔히 우리가 받는 훈련은 최소한의 도움밖에 되지 않는다. 신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보통 상담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한 상담에 대해 가르치는 사람들은 신학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으며 역시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목회 현장에서 그 둘을 연결시켜야 할 때가 되면 우리 스스로의 방법대로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개인 및 결혼. 그리고 가족을 상대로 한 임상치료사로 일하고 있으며. 다른 치료사를 감독할 뿐 아니라 대학원 수준의 신학도 가르치고 있다. 나는 자주 신학적인 면과 임상치료적인 면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이 글에서 내가 의도하는 바는 바로 우리에게 자신의 문제를 들고 오는 사람들의 상황 속에서 그 영적 차원이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것과 내가 치료에 있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함께 나누려는 것이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다음 9 가지 지침의 형태로 제시하고자 한다.
하나님
첫째로 하나님은 모든 경험 중에서 가장 깊은 차원이 되신다. 이 원칙은 하나님의 실재를 전제하고 있으며 이 원칙의 취지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신가를 말하려는 데 있다.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를 만들고. 세상의 행로를 인도하며. 결국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모든 실체의 근원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이 초월적 신비가 다양하게 상징화되어 있는데. 남성, 여성, 중성의 비유 등 인간 경험에서 비롯된 암시적인 비유의 형태로 나타나 있다.
성경의 어떤 책이나 본문에 초월의 상징적 제시가 어떻게 나타나든지 간에. 성경 전체를 통해 개인의 종교적 경험에 토대한 하나의 확신이 흐르고 있다. 즉 이 모든 사물의 신비한 근원은 인격적이며 우리에게 자비로우시며 우리 각사람과 대화를 나누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 첫번째 원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실체가 현재하며 편안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개 사람들은 그 실체가 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털어놓기 시작할 때. 이 원칙은 우리나 그들이 알건 모르건 간에 하나님께서 이미 현재하시며 그들의 삶 속에서 활동중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외계에 계셔서 우리가 불러들여야만 하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비활동적이거나 행동하시도록 설득해야 할 필요가 있으신 분은 아니시다. 즉 그분의 임재는 기도나 종교의식. 성경읽기 같이 하나님을 접하는 특별한 종교적 활동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미 여기에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해 계신 분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경험의 밑바닥에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과 의혹과 노력과 갈망의 가장 깊은 차원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도전들과 선물들 모두의 가장 깊은 영역이시다. 하나님을 찾아야 할 장소는 위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고 바로 우리 안이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가 그 안에 거하는 바로 그 배경이시며. 우리가 가는 곳마다에서 만나게 되는 분이시다.
개인의 삶
둘째로 하나님은 개인의 삶의 활동이 있는 곳에서 가장 현재적이시며 활동적이시다. 사람들이 보통 우리에게 가지고 오는 것은 위기상황들이다. 어떤 사람이 죽었다. 어떤 일이 발생했다. 10 대의 자녀를 다루기가 너무 힘들다. 어떤 사람이 마약중독에 빠졌다. 우울과 고독이 삶을 견딜 수 없는 짐이 되게 한다 등.
이 원칙이 주장하는 바는 이같은 여러 위기상황들 속에서 바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의 삶 속에 가장 현재적이며 활동적이시라는 사실이다.
그러면 이런 질문들이 제기된다.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의 소명은 무엇인가. 이러한 상황이 제시하는 도전과 기회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여기로 우리를 초대하시고 여기 서있게 하셨는데. 그러면 무슨 치유와 성장이 있는가.
나는 내담자가 이야기를 털어놓는 동안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본다. 나는 또한 내담자에게도 그 질문들을 던진다. 왜냐하면 나는 내담자들이 그들 관심사의 이 깊은 차원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발생한 문제에 대해 함께 토의함에 따라 아마 우리는 각각 이러한 질문들의 대답이 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대답들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점 더 명확해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일단 우리는 두사람 다 문제를 깊은 차원에서 생각하게 된다.
신앙적인 사람들에게도 이 원칙을 상기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교회출석. 성경읽기. 개인기도 등을 하나님과 만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우리가 처한 삶의 상황들. 특히 위기상황들 또한 하나님과 만나는 지점이라는 것을 간과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들에서 우리가 내리는 결정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며 우리 자신이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까를 결정하는 매우 중대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생성(shaping)해가고 있는 것이다. 위기상황들 속에서 우리가 내리는 결정들의 결과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의 궁극적 목적과 직결된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것에 관심을 갖고 계시며. 때문에 현재하시며 활동적이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그분이 의도하고 있는 선한 방향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중 한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