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송에서는 동성애, 트랜스젠더 같은 용어들이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들 용어들이 정확한 이해 없이 나오면서 혼동만 가중되고 있다. 트랜스젠더는 동성애와 전혀 다른 개념이다. 동성애는 성욕을 느끼고 성행위를 하는 상대가 문제인 경우이다. 즉 성욕이 어떤 상대에게로 향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성적 지남(指南), 또는 지향(指向, sexual orientation)이라고 한다. 동성(homo)을 향해 성욕이 일어 성행위(sex)를 하는 것을 동성애(homosexuality)라 한다. 반면 이성을 향해 성욕이 일어 성행위를 하는 것을 이성애(heterosexuality)라 한다.
호모섹슈얼리티라는 용어는 19세기에 만들어진 명칭이다. 이를 우리나라에서는 동성애(同性愛)로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애’(愛)로 번역된 것은 잘못이다. 동성애는 동성 간 사랑이 아니며, 더구나 동성 간 우정, 형제애, 동지애, 전우애 같은 것도 아니다. 동성애의 애는 성행위를 의미한다. 그래서 군대 내 전우들 사이에 동성애라는 성행위가 개입되면 안 되는 것이다.
한편 트랜스젠더, 시스젠더, 젠더퀴어 같은 젠더 문제는 자신이 남자인가 여자인가 하는 성(젠더) 정체성의 문제이다. 트랜스젠더가 20세기 중반에 널리 알려지면서, 자연스레 사람들 사이에 트랜스젠더가 성행위를 하면 그것은 동성애인가 이성애인가 하는 문제에 관심이 일었다. 예를 들면 트랜스남자가 시스젠더 남자와 성행위를 한다면 트랜스 남자 자신이 볼 때는 동성애를 하는 것이지만, 외형상으로 보면 이성애를 하는 것이다. 트랜스 남자끼리 또는 트랜스 여자끼리 성행위를 하면 이는 동성애를 하는 것이다. 트랜스 남자와 트랜스 여자가 성행위를 하면 외형상 이성애가 된다.
어쨌든 자신이 어떤 성(젠더) 정체성을 가지더라도 상대방과의 성행위는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가 될 수 있다. 그 양상은 어떻게 될까. 2015년 미국에서 조사한 결과 2만7715명의 트랜스젠더(젠더퀴어 포함) 중 15%가 이성애를, 16%가 동성애를, 14%가 양성애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8%는 범성애자(pansexual)라 했고, 10%는 무성애자(asexual)라 했다. 21%는 자신의 성 지남이 젠더퀴어로 향한다고 했다(복수 응답). 이러한 색다른 성적 지남이 등장한 것은 최근 성적 지남의 종류가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2019년 캐나다의 한 조사에 따르면 2873명의 트랜스젠더 응답자 중 8%가 이성애자, 13%가 게이, 15%가 레즈비언, 28%는 양성애자, 13%는 무성애자, 31%는 범성애자라고 했다(복수 응답).
한편 시스젠더가 트랜스젠더와 성행위를 하는 경우도 발견된다. 그렇다면 수많은 종류의 젠더퀴어가 성행위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이들 각각에 다른 명칭이 부여될 것이다.
이처럼 성(젠더) 정체성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고, 성행위 대상도 다양해지고 있어 성적 지남의 종류가 더욱 많아질 수 있다. 이들 각각을 무엇이라 명명할지 매우 혼란스럽다. 이런 혼란을 피하기 위해 한때 주체의 성 정체성과는 상관없이, 생물학적 남자를 상대로 성행위를 하는 것을 안드로필리아(Androphilia, 남자 애호), 생물학적 여자와 성행위를 하는 것을 진필리아(gynephilia, 여자 애호)라고 부르자는 제안이 있었다.
또 본인들이 뭐라고 명명하고 주장하든, 성적 지남은 트랜스젠더가 되기 전 또는 성전환 수술을 하기 전의 유전적 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설득력이 있다. 성행위자 간 유전적 성이 같으면 동성애, 반대면 이성애라는 것이다. 성적 지남은 개인의 젠더 정체성과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크리스천은 생물학적 성으로 성 정체성을 삼고, 성행위는 일부일처제 결혼 내에서 부부간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요즘 세상을 보면 인권 차원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크리스천은 분별력을 갖고 잘못된 문화를 객관적이고 과학적 자료로 논박할 능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민성길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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