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2-24 14:33
분노에 대한 치유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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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382  

분노에 대한 치유 상담

장동학(상일교회 목사, 고려대학원 상담심리 전공)


1.화를 내야할까?

얼마전 차를 운전하고 지나갈 때였다. 그때 갑자기 골목에서 중형승용차 한대가 쏜살같이 나오는 것이었다. 급브레이크를 밟아 다행히 안전하게 피할 수 있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표시만 보여주면 지나갈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건장한 사내가 차에서 내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너 죽을래? 쥐방울만한 차를 타고 다니면서 다른 차를 살펴보지도 않아! 내려와! 한번 붙자"

이 말은 내가 한마디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나왔던 말이다.

나에게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 “그래 소형차 몰고 다닌다고 업신여기는 거냐? 내가 직진이고 너는 골목에서 조심도 없이 튀어 나왔는데 말이야! 그리고 너 싸움꾼이냐 무조건 치고 박는게 직업이야?” 이 말은 즉시 나온 것이 아니라 차를 몰고 지나간 후 한참 이따가 화가 나서 스스로 찬 말이었다.

"에이 목사만 아니었다면! 그런 썩어 빠진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가만두지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화가 풀리지 않았다. 서로 화를 내고 해결했다면 분노가 쉽게 가셨을 텐데 목사라는 틀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온 것이 두고 두고 분노를 가지게 한 것이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화평케하는자(Peace Maker)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상황 속에서 화를 내지 못하여 자기 속에 분노를 쌓아 둘 때가 많다.

그렇다면 성스런(?)기독교인들은 화를 참아야만 하는가? 아니면 분출해야 하는 것일까?

2.그렇다면 분노의 원인은

분노는 인간의 회노애락 중의 하나인 노에 연루된 하나님께서 주신 감정이다. 특히 믿는 사람에게까지도 당연하게 생각되는 감정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일반적 감정인 '노'가 '분노'로 변화되는데 문제가 있다. 이런 분노로 나타나게 되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각 개인이 분노하는 성향이나 방법이 다르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1) 왜곡된 지각 때문에 분노가 야기된다.

사람들이 주위 환경을 잘못 판단하여 자신의 행동을 엉뚱하게 곡해하고 부당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분노케 되는 가장 흔한 경우이다.

2) 위협이나 해를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부당하다고 생각될 때 분노하게 된다. 즉 자신이 할 수 있는 마땅한 일을 다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존감이 상해 있고 피해의식에 사로 잡혀 있을 때 외부에서 공격을 받게되면 분노하게 되는 경우이다. 이때는 내가 약하여 위협을 받는다고 인식함으로 반격의 수단으로써 화를 내고 공격하게끔 분노하게 된다.

3) 갑작스런 좌절감에 빠질 때 분노하게 된다.

설정한 목표를 향해 가지 못하게 하는 급작스러운 장애물을 만나게 될 때 좌절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엄청난 분노가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면 필자가 얼마전 미국에 갔다 올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함께 갈려고 비자를 신청한 목사님께서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목사' 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목사는 못믿겠다라는 것이다. "아니 ! 목사를 못 믿으면 누구를 믿겠다는 것인가? 그 뒤의 분노는 엄청난 것이었다.

4) 자신의 불완전성을 깨닫게 되거나 자기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것이 적자라하게 드러나게 됐을 때 분노하게 된다. 이때의 분노는 자신감의 결여나 열등감에서 기인되는 수가 많다. 이런 사람은 습관적으로 쉽게 화를 내며 조절하지 못함으로써 분노하기도 한다. 분노하는 것이 힘을 가진 것처럼 생각해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하여 습관적으로 분노하는 경우이다.

5) 분노는 영적인 관계와도 밀접하다는 사실이다.

에베소서 4장 26-27절을 보면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분노에 대한 영적인 해석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화를 내면서 영적으로 겸손하게 신앙 생활 하기는 어렵다. 분노한다는 것은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 신앙의 성숙과 반비례한다. 그러므로 빨리 분을 풀어야 한다. 그 이유는 분노하는 사이에 마귀의 공작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마귀가 그 틈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엡 2:3을 보면 우리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 마귀는 화를 내서 죄를 짓기를 원하고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원하고 있다. 실제로 화를 내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사랑과 분노는 함께 공존 할 수 없는데 분노가 일게 되면 사랑은 소멸되기 때문이다.

3. 당연한 감정인데

여하튼 분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감정 중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좋아졌다고 해서 화를 자주 안낼 것이라는 사실은 오히려 우리를 불안하게 할 위험이 많다. 그러므로 분노는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사실이 우리가 분노를 치유하는데 있어서 선결되는 조건이다.

에베소서 4장 26절 말씀을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은 분노는 누구에게나 있고 단지 죄를 짓지 말아야 할 것을 설명하고 있다. 사실 분노는 누구에게나 있고 당연히 화가 나는 것은 정상적인 감정이다. 문제는 화가 나는 것을 참아서 무의식 속에 억지로 넣느냐 아니면 바로 화를 내느냐에 대한 차이이다.

사실 화나는 것을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해 온 것은 사실이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특히 화를 내는 것은 커다란 악행이라고 여겨왔다. 그래서 공공연하게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이라는 등의 말이 미담으로 전해져 왔다.

이런 사회구조의 영향으로 유독 우리 나라에서만 "홧병"이 있다고 한다. 이 병은 화가 나는데 계속 참아서 결과적으로 가슴이 뛰고 손이 떨리며 밥맛을 잃게 되는 병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당연한 감정을 숨길려고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 분노는 정당한 감정이다. 따라서 드러내고 해결책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4.필요한 분노도

그렇다면 누구든지 분노 할 수 있다면 신앙인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초점이다. 화를 낼 수 있다고 해서 개인적인 이유로 화를 내는 것은 성경에서 원하는 분노가 아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거룩하고 건설적인 분노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습은 모세를 통해서 이해 될 수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하면서 크게 2번 화를 내게 된다. 한번은 건설적인 분노요 또 하나는 파괴적인 분노였다.

건설적인 분노

모세는 어렵게 바로에게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에 도착하게 된다. 그들은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도착했을 때 불평하기 시작한다.

"네가 우리를 잘살던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이려고 하느냐?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느냐?하면서 모세에게 대항하게 된다. 모세도 꽤나 화를 잘 내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민수기 10장 15절을 보면 "모세가 심히 노하여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는 사람들의 예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라고 무지하게 화가 난 상태에서 기도를 드렸다.

문제는 하나님이셨다. 그저 사랑으로 감싸 주시는 하나님께서 모세가 그렇게 화를 내면 오히려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실 일인데 더 화를 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너희는 이 회중에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여기서 모세의 분노는 정당했으며 건설적인 분노였던 것을 알 수 있다.

파괴적인 분노

그런데 모세가 화를 내는 또다른 모습이 있다. 민수기 2O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목마르게 되어 모세에게 화를 내게 된다. "아니! 우리를 애굽에서 죽일 것이지 하나님께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할려고 하느냐? 여기에는 무화과, 포도, 석류도 없고 더구나 마실 물도 없도다"

그러자 모세는 다시 하나님께 다가가서 분노를 가지고 기도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화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못된 백성에게 반석을 명하여 물을 주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이번엔 자기편이 아님을 안 모세는 화가 나서 아론과 합께 총회를 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래! 패역한 사람들아 들으라! 우리가 이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게 하겠다."라고 하면서 화가 나서 반석을 2번 치게 되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된다. 이 잘못된 분노로 모세는 그렇게 원하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개인적인 분노는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세의 삶을 통해서 볼 때 분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분노는 개인적인 죄를 해결하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건설적으로 써야함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화를 낼 때 어떤 시기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이유로 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분노는 당연하게 일어날 수 있다. 예수님도 바울도 화를 내셨다. 문제는 건설적인 분노였다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은 에덴에서 알지못하는 신들을 섬기는 것에 분노하였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방인을 섬긴다는 것에 대한 건설적인 분노였다.

예수님의 분노도 마찬가지이다. 공생애 동안 발하신 분노는 우리와 전혀 다른 분노였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화를 내셨을 때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든다는 생각 때문이셨다. 개인적인 분노가 아니었다. 후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도 많은 화를 내셨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을 무서워했고 결국은 못박게 하는 중추적인 입장이 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이 바리새인들에게 화를 내셨는가? 그것은 당시 바리새인들이 많은 양들을 이끄는 잘못된 영적 지도자였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고 더러운 침을 뱉을 때 아무런 변화가 없으셨던 것이다. 오히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분노는 결코 이기적인 일로 인해 나타난 것이 아니요 건설적이며 필요한 것이었다.

5. 이렇게 해결하자

분노는 처리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그 화를 참아야 하는가에 대해 즉각적인 기술방법과 평소 쌓아야 할 장기적인 방법이 있다.

즉각적인 분노에 대한 훈련

1) 분노가 야기 되기전에 자신을 노하게 만든 그 상황을 무조건 잠깐 떠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즉 시선을 잠깐 하늘이나 먼 산으로 돌려 보거나 크게 긴 한숨을 쉬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가능하다면 잠깐 대화를 멈춘 다음 몇 걸음을 걷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떠남'이 순간적으로 폭팔하려는 분노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2) 상대방과 이야기 하다가 분노가 일게 되면 모든 행동이나 말, 몸짓 등을 정지하고 조용히 묵상한다. 이것은 원색적인 반응에 본인이나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때 하나님께 마음에 끓고 있는 분노를 그대로 토로하고 기도한 후에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 왜냐하면 이런 모습은 상대방에게 있어서도 서로 참는 모습과 기도하는 모습이 보여지게 되어 노력하는 진실된 면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3) 화나는 상황만 바라보지 말고 그런 상황에까지 오게 된 동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는 말이다. 모든 것은 이유가 있는 법이다. 분노가 일게 될 때는 복합적이어서 어제 일로 그 분노가 쌓여서 나타날 수도 있고 다른 일이나 다른 삶으로 분노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여러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4) 자신을 노엽게 한 행동이나 말을 가능한 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 영적 배후를 생각하는 것이다. 즉 나에게 고통스런 말을 준 사람은 그 바람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광명의 천사 모습을 하고 온 마귀라는 사실이다. 이런 영적 원리를 알게 되면 그들이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 스데반과 같이 용서 할 수 있는 기질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표면에 나타난 말과 행동보다는 그 밑에 숨어 있는 영적 존재를 살펴 보아야 한다.

장기적인 분노에 대한 훈련

1) 다른 사람들이 "왜 화를 내느냐?라고 한다면 자신이 분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또 다른 분노를 야기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좋으면 좋고 화나면 화난다‘라고 솔직한 감정을 말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Message”가 중요하다.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감정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화나는 것이 보이는데 화난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처럼 화나게 만드는 경우가 없다. 그래서 스피로스(Spiros Zdhdiates)는 '행복의 추구'라는 저서에서 오히려 "분을 낼 수 없는 사람은 자기 개선에 필요한 힘이 결핍되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2) 평소에 자신이 민감하게 분노하는 부분을 생각해보고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령 어떤 일이 나에게 화가 나게 만드는지, 내 분노가 참으로 정당한 것인지, 그렇다면 왜 내가 유독 이 부분에 민감해서 분노를 터트리는 것인지 분석하고 추적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에 대한 방법론에 있어서 먼저 화나는 것에 대한 목록을 작성한다. 만약 하나님께서도 노하실 것이라면 A를 하고 스스로만 화나는 일이라면 B로 기록한다. 그리고 A항목이 있는 곳은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B표가 있는 것은 감사할 수 있는 조건과 긍정적인 방법을 생각해 본다.

3) 절제하는 습관을 갖도록 훈련해야 한다.

이미 분노한 후에는 후회해봐야 소용이 없다. 절제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절제는 훈련이라는 사실이다. 연세 드신 분들은 그다지 화를 자주 내지 않으신다. 그것은 세월이 흐르게 되면 자동적으로 분노가 수그러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좌절과 부딪침이라는 방어벽을 통하여 절제라는 훈련을 쌓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분노는 훈련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바른 생각을 가지고 바른 행동을 해야만 바른 분노가 나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잠 29 : 11)

4) 자신의 성격에 대한 자존감, 자신감을 길러나가야 한다. 계속적인 분노는 자신에게 있어서 자존감, 자신감 결여로 나타나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열등감 때문에 도리어 화를 내고 우윌감을 인정해 주지 않음으로 분노를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해야 한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감정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자존감과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5) 분노에 대한 최고의 해방은 말씀과 더불어 기도하는 것이다. 말씀과 기도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인격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서 내 분노를 내가 용서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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