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죽이는 훈련 (잠 12:18) 칼로 찌르듯이(남의 허물을 들추는)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건강하게 하느니라. (잠 15:1) 부드러운 대답은 진노를 돌이키거니와 과격한 말들은 분노를 일으키느니라. (잠 17:20)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자는 좋은 것을 얻지 못하며 뒤틀린 혀를 가진 자는 해악에 빠지느니라. (잠 21:23) 누구든지 자기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 혼을 지켜 고난들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잠 26:23) 불타는 입술(급히 분노를 쏟아내는)과 사악한 마음은 은 찌꺼기를 입힌 질그릇 조각 같으니라.“ 말을 급하게 하고 큰 소리로 화를 내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을 존중하듯이 남을 존중하는 자존감이(自尊感)이 부족하고, 오직 부인이나 자녀. 상대를 무시하고 자신의 존재만을 드러내려고 하는 자존심.(自存心)이 강함을 알 수 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가운데도 이런 단점을 오래 동안 고치지 못함을 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 안 중직들 가운데서도 상대가 얼마나 상처받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다가 고압적인 태도와 부부의 잦은 다툼으로 말미암아 충격 받은 자녀들이 우울증, 히끼꼬모리(운둔형 외톨이), ADHD, 장애 등, 사춘기 때가 되면 가출, 또는 비행을 저질러 경찰서를 드나들고, 가정이 깨진 후에야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들 참으로 많이 있다. 깨진 후에야 후회 한들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의 사이는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에 있다고 한다, 제 주변에 있었던 목사는 제법 큰 교회를 담당하고 있었지만, 그 부인을 함부로 대하고, 한번 화를 내면 주위에 손님이 있든 누가 있든 간에 자기의 화를 다 쏟는 일들로 참다못한 부인에게 이혼 당하자 꼬리표같이 따라다녀 목회를 하지 못하고 다른 도시로 가서 공장 노동자로 다니고, 심지어 장로였던 사람이 교회조차도 나가지 않는 것을 보고 찾아가서 다른 교회로 나가도록 권면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5장 8절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너무나 두려운 말씀이다. 교회 안에서 누구보다 신사적이고, 사랑을 외치던 사람이 가정에 돌아가면 폭군으로 변하고, 말을 함부로 하고, 화를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 사람들 너무 힘들게 신앙하지 말고 차라리 세상 사람들과 같이 편하게 살기 바란다. 애써 번 돈을 십일조, 감사헌금, 구제헌금, 절기헌금 등을 바치고, 없는 시간 쪼개서 봉사하며 예배참석하며 열심히 신앙을 한들 그 마지막이 주님계신 천국이 아니고 슬피 울며 이를 가는 불 못에 들어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잠 9:8)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마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이 시간 자신을 돌아보길 바란다. 스스로 진단하여 쓰레기 같은 자존심이 아직 살아있다고 느낀다면 사도바울의 고백같이 날마다 자신을 죽이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길 바란다. 그래서 갈라디아 2장 20절을 마음 중심으로 고백하는 신자들이 되길 기원한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