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만이 가진 보물은 무엇일까? 내가 네 아이들에게 보물을 숨겨 놓았단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유난히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유모차를 끌고 가고 있는데, 생뚱맞은(?) 주님의 음성이 마음속에서 들려왔다. ‘미나야, 너 나랑 보물찾기하자.’ 갑자기 웬 보물찾기를 하자고 하시나? 이건 무슨 말씀이신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연이어 주님의 음성이 더 들려왔다. ‘미나야, 내가 네 여섯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보물을 숨겨 놓았단다. 어떤 보물을 숨겨 놓았는지 잘 찾아보렴. 보물을 찾기 위해서 두 가지 조건이 있단다. 첫째, 내가 소중한 보물을 정말로 숨겨 놓았다는 것을 믿어야 해. 둘째, 네 안에 있는 네가 생각하는 보물의 우상을 무너뜨려야 내가 숨긴 보물을 찾을 수 있단다.’ 생각지도 못했던 갑작스러운 주님의 음성에 나는 눈물을 흘리며 유모차를 끌고 갔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내 마음을 다 보고 계셨구나 싶어서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 당시 나는 무지한 홈스쿨러 엄마를 둔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되기도 했고, ‘그래도 어느 정도의 대학과 어느 정도의 직장’이라는 기준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것이 우상이라고 말씀하시니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회개하며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울고 또 울면서, 아이들이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내가 사람들로부터 받고 싶은 ‘칭찬’이라는 우상을 무너뜨리고, 또 그렇지 못했을 때의 두려움도 씻어버렸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우상이 벗겨지고,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시는 믿음의 눈으로 조금씩 변화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되었다. 평범한 대학에 평범한 직장을 다니는 한 남자. 교회에서 목사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든든한 일꾼이요, 예배마다 뜨겁게 주님을 갈망하는 예배자요, 그의 가정은 하하호호 웃음꽃이 피고, 그와 아내는 서로 따스한 눈빛과 손길로 사랑하고, 그의 자녀들은 말씀을 먹으며 믿음 안에서 부모의 사랑으로 바르게 자라고, 그의 온 가족은 저녁마다 모여 뜨겁게 예배를 드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는 가정예배 가운데서 온 가족이 눈물로 주님의 도움을 구하고…. 이 장면을 떠올리니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눈이 떠지는 것 같았다. 첫째 세이는 언제부턴가 자신의 꿈은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아버지로서 자녀들을 말씀으로, 신앙으로 잘 양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긴 했지만 그게 이 아이의 꿈이 될 줄이야. 마음이 불편했다. 세이가 구체적으로 꿈을 꾸며, 실제적인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저는 나중에 아이들을 낳으면 암송은 ‘303비전성경암송노트’로 할 거예요.” “아버지, 아버지가 만드셔서 우리가 하고 있는 ‘묵상노트’, 저한테 다 물려주실 수 있죠?” “당연하지. 다 줄 수 있어!” 남편은 신난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세이의 꿈이 맞다. 세이의 꿈이 옳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꿈일 터다. ‘세이야, 좋은 아버지가 되어 너의 아들과 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꼭 전해다오. 어머니, 아버지의 신앙이 너와 네 자녀에게 계속해서 전수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단다. 내 안의 우상을 아직도 깨뜨리지 못하고 너의 꿈을 지지하지 못했던 어머니를 이해해다오.’ 하나님의 ‘보물찾기’ 제안을 받고 눈물로 기도하며 내 안의 우상들을 무너뜨리기 시작하자,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조이가 고무밴드를 찾아서 가져갔다. 얼마 되지 않아 “사세요~ 사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싶어서 가보니 조이가 테이블에 물건을 놓고 형과 동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고무밴드가 필요했는지를 보는 순간, 나는 감탄하고 말았다. 주일학교에서 간식이나 선물로 받았던 사탕과 초콜릿을 안 먹고 모아뒀다가 사탕 5개, 초콜릿 3개, 이런 식으로 고무 밴드로 묶어서 팔고 있었다. 저런 장사수완은 어디서 나왔나 싶어 입이 쩍 벌어졌다. 동생들은 맛있는 간식이 눈앞에 있으니 앞 다투어 지갑을 들고 와서 사기 시작했다. 돈이 모자라면 나한테 와서 꼭 사야 한다고 돈을 달라고 하기까지 했다. 사탕, 초콜릿뿐만 아니라 장난감이나 문구류도 받아서 자기가 쓰지 않고 두었다가 팔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조이는 ‘돈’에 대해서 좀 특별했던 것 같다. 말레이시아 학교는 한국처럼 급식이 없어서 도시락을 싸 가거나 학교 구내식당에서 사 먹어야 했는데 도시락 5개 싸는 게 너무 힘들었을 때 나는 첫째부터 셋째까지 사 먹을 줄 아는 큰아이들에게 일주일치 점심 식사비를 주며 사 먹도록 했다. 세이와 태이는 거의 매번 받은 돈을 그 일주일 안에 다 사 먹곤 했는데, 조이는 그 점심값에서 항상 돈을 모았다. 그러면서 어느 날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머니, 저는 금요일만 제가 먹고 싶은 걸 먹는 날로 정했어요. 나머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제일 싼 로띠 차나이(Roti Canai. 밀가루 반죽을 넓게 펴서 구운 납작한 빵을 커리 소스에 찍어먹는 말레이시아식 인도 요리)만 먹어요.” 조이는 이렇게 학교에서 로띠 차나이로 점심을 때우고, 집에 돌아와서는 간식이라고 하기엔 엄청난 양의 제2의 점심식사를 하면서 돈을 모았던 것이다. 다른 맛있는 것도 먹고 싶었을 텐데 돈을 모으려고 그것을 꾹 참고 금요일만 그런 자기에게 보상하듯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는 말에 놀라울 뿐이었다. 어느 날은 아이들과 물놀이하러 계곡에 갔는데, 조이는 물고기를 잡겠다며 낚싯줄과 밑밥용 식빵을 들고 왔다. 그런데 조이가 물고기를 잡겠다는 의지 하나로 그 뜨거운 오후 땡볕에 계곡 한가운데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1시간 정도 가만히 서 있었다. 목이 너무 뜨거운지 옷으로 목을 가리려고 하는 조이를 보는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회개의 눈물이었다. ‘하나님, 제가 조이의 엄마지만 저는 우리 조이를 잘 몰랐습니다. 조이가 물고기를 잡겠다고 1시간째 저러고 있는데, 저는 조이에게 저런 끈기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늘 대충대충 한다고 잔소리하고, 끝까지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비난하고 한숨 쉬었는데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께서 조이에게 어떤 보물을 숨겨두셨는지 보지도 못하고, 아니, 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제 눈에 보이는 대로 평가하고 생각했던 저의 무지함을 용서해주세요.’ 다섯째 예이는 언어에 남다른 감각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말레이어를 배울 때, 어린 예이가 옆에서 듣고 물어보기에 기본 구조를 가르쳐주었더니 그에 맞춰서 응용해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영어 듣기 훈련을 위해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매일 영어 동화를 보고 있는데, 예이가 그 억양과 문장을 기억해두었다가 그대로 따라 하는 모습이 놀랍기도 했다. 그 이후로 ‘보물찾기’의 임무를 맡은 신실한 청지기가 되기 위해, 틈나는 대로 아이들에게 어떤 보물이 있나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내가 아이들을 바라볼 때,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의 단점과 고칠 점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는데 “아이들 안에 진짜 보물을 숨겨두었으니 찾아보라” 하시니까 그 보물을 찾기 위해 내 눈이 크게 뜨이고 관점이 바뀌었다는 것이 참 감사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해주신 ‘보물찾기’가, 때로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낙심되고 절망스러운 순간에도 다시금 믿음의 눈을 열어 보물을 찾고자 애쓰는 나의 자녀 양육이 되게 하심에 감사할 뿐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꼭 들려오길 기도한다. ‘사랑하는 내 딸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네 자녀들 안에 내가 숨겨 놓은 보물을 찾아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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