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따라 잘 휘둘리는 사람, 감정 기복이 적은 사람
/ 때로는 ‘기분’이 절반이다
1. 우리가 어떤 일을 판단하고 결정할 때는 언제나 합리적인 생각이나 타당한 이유가 있다. 아니,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자잘한 일뿐 아니라 심각한 업무, 그리고 국가적 대소사에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럴듯한 대의명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외로 그런 이유와 명분이 없는 경우도 많다. 자신은 명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더 자잘하고 구차한 이유들이 숨어 있는 때가 많다는 거다.
사람의 행동과 결정에 많은 것을 좌지우지하는 뜻밖의 요소가 있다. 특히 갈등과 분쟁이 생기는 많은 선택들, 남녀 간의 갈등이나 심지어 대량 살상이 일어날 수 있는 전쟁조차 실제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다른 이유 때문일 수 있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고, 당사자도 자신이 다른 것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기분’이다. 그냥 기분이 안 좋고 마음이 상해서 그런 것이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쪼잔해 보이기도 하고 그야말로 명분이 없으니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
기분이 좋아야 마음이 열리고 여유가 생기며 웃음이 나온다.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하면 어떤 큰 선물과 호의에도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어릴 때도 부모님 기분이 좋아 보일 때 성적표를 꺼내듯,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 연인이나 배우자의 표정을 살피게 된다.
반대로 관계 속에서 마음을 다칠 때, 기분이 상한 것을 드러내기란 자존심상 쉽지가 않다. 그래서 계속 꽁해 있거나 다른 핑계로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부부나 연인 간에, 가족 간에 흔히 있는 일이다.
감정이란 일순간에 확 상하기도 하지만, 아주 미미한 일에 좌우될 때도 있다. 상한 기분이 풀리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이걸 억지로 풀려다 보면 더 안 좋은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다운된 분위기를 억지로 살리다 보면 더 망가진다.
여자들은 기분이 상하면 즉시 표현하는 편이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쉽지 않다. 남자들은 작은 일에 기분이 상했어도 삐쳤다는 말을 들을까 봐 내색을 안 하다가 더 크게 터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엉뚱한 일에서 그 상했던 기분이 폭발하면 연인이나 아내는 어리둥절할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집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 작은 일에 생각보다 더 크게 화를 내는 사장님과 부장님도 반드시 그 일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것에서 기분이 상했을 수 있다. 한강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화풀이하는 거다. 그래서 관계의 약자들이 감정싸움에서는 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2. 기분은 일상과 밀접해서 자주 쓰이는 유행어로도 나타난다. 예전부터 감정에 따라 돈을 잘 쓰거나 화끈한 사람을 ‘기분파’라고 했다. 뭔가 베풀 때는 “기분이다!”라고 한다. 한국말을 배우는 외국인이 들으면 이해하기 힘든 말일 것이다. 기분이 너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상태는 “기분 째진다”라고도 했는데, “기분 튿어진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분상’이라는 말도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고 기분이 그렇다고 할 때 쓰는 말이다. 별다른 이유가 없다 보니 ‘기분학(學)상’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표현도 예전에는 종종 쓰는 말이었다.
기분(氣分)은 기운이 사람에게 골고루 분포된 상태라고 한다. 마음에 생기는 유쾌, 불쾌, 우울 따위의 주관적이고 단순한 감정 상태라고 정의돼 있다. 그런데 기분은 단지 마음의 상태나 좋고 싫음을 넘어, 질병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기분장애’, ‘기분부전증’ 같은 병명이 존재한다.
우울증과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인관계와 사회생활에서 자신도 모르게 겪는 증상 중 하나일 수 있겠다. 지인들과 잘 있다가도 갑자기 집에 가고 싶거나, 연인과 시간을 보내다가도 모든 일이 심드렁해지는 그런 상태가 아닐까 싶다.
성경에도 ‘기분이 상한’ 이야기는 많이 나온다. 그중에서 스데반이 죽는 장면에서 죽는 자는 오히려 가해자들의 용서를 비는데, 죽이는 자들은 기분이 매우 나빠서 살인까지 저질렀다고 했다.
“그들이 이것들을 듣고 마음이 상하여 그를 향해 이를 갈거늘(행 7:54)”.
스데반의 구구절절 뼈를 때리는 설교를 듣던 백성과 바리새인과 대제사장은 마음이 상했다. 안 좋은 기분이 더 안 좋아질 때는 마땅한 핑계가 없을 때다. 다 맞는 말인데 인정하기는 싫으니, 자존심도 상하고 괘씸한 마음이 들어 이를 갈며 죽여 없애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수님을 향해서도 그들은 똑같은 분노를 품었었다.
결국 그들은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고 만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죽일 수 있었던 무모한 용기는 명분이 아니라 상한 마음에서 시작됐다. 이것을 무시해선 안 된다. 명분이란 자존감, 명예, 책임, 심지어 정의감이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채워지곤 하지만, 결국 옹졸한 마음 속 상처에서 비롯된 기분일 때가 많다.
창세기에서 가인은 하나님이 아우인 아벨과 그의 헌물만 기뻐 받으시자, 기분이 무척 상했다.
“가인과 그의 헌물에는 관심을 갖지 아니하셨으므로 가인이 몹시 분을 내고 그의 얼굴빛이 변하니라. 주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분을 내느냐? 어찌하여 네 얼굴빛이 변하였느냐(창 4:5-6)?”
가인은 자기 기분을 숨기지 못하고 얼굴에 드러냈다.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 성질을 떠는 모습이다. 제 딴에는 열심히 헌물을 준비했을 수도 있고, 이렇게 하면 칭찬받겠지 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그건 다 자기 생각이었다. 그런데 수고가 물거품이 되니 기분이 상한 것이다.
하나님은 가인을 벌하시면서도 그의 안전을 위한 조치들을 해주실 만큼(창 4:15) 자비로운 분이지만, 또한 공의로우신 분이라 헌물은 정해진 대로 해야 하건만, 가인은 제멋대로 했다. 그러면서도 자기 헌물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골을 부렸다. 하나님은 가인의 태도와 준비하는 동기와 과정을 모두 기뻐하지 않으셨다.
3. 우리도 이렇게 종종 자기 생각 안에서 마음대로 결정하고 열심을 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화를 낸다. 예를 들어 아내가 좋아하겠지 하면서 꽤 비싼 화장품을 샀는데 쓰지 않는 브랜드라며 핀잔만 듣거나, 남편 생각해서 옷을 사다 주니 쓸데없는 돈을 썼다며 반품하라고 한다면, 기분이 상해서 다시는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길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꽤 큰 돈인데 필요한지 물어보지도 않고 당연히 좋아하겠지, 좋아해야 돼, 안 좋아하기만 해 봐 이런 식으로 혼자 빌드업(?)을 하는 일이 많다.
가인은 하나님의 준엄한 기준을 어긴 것이니 당연히 책망을 들은 것이고…, 사람 간에는 웬만한 실수는 좀 용납하고 받아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바가지를 쓰고 산 물건이거나 마음에 안 드는 선물이라도, 그걸 꼭 티내서 기분을 잡치면 쓴 돈보다 훨씬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꼭 받아서 맛이 아니라, 그 마음을 헤아려줘야 기분이 상하지 않고, 기분이 좋아야 관계가 잘 풀리기 때문이다.
어린 자녀가 기념일이라고 서프라이즈로 열심히 팬케이크를 만들었는데, 연기가 자욱한 집에 돌아온 엄마가 프라이팬 태워 먹었다고 야단만 친다면, 얼마나 상처받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남의 기분을 망쳐놓고 그럴 만했다고 주장하지만, 더 큰 것을 잃는 어리석은 선택을 많이 한다. 용납하지 않는 너그럽지 못한 마음을 만나 감정이 상한 사람의 기분은 관계의 모든 부분에 번지고, 다른 일들마저 그르친다.
자기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음료도 상표를 떼고 아무 정보 없이 컵에 따라주면, 그만큼 맛이 안 난다. 멋진 카페의 테라스에서 마시는 커피는 왠지 더 진하고 맛이 좋은 법이다. 기분이란 그런 것이다. 같은 말과 행동도 조금은 성의 있게 하고, 같은 선물도 제대로 포장하면 훨씬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기분에 너무 잘 휘둘리는 사람은 남도 힘들게 하고 스스로도 힘이 든다. 기분에 민감한 사람은 예민한 사람인데, 타인의 감정을 잘 살피고 실수를 잘하지 않지만 그만큼 피곤하다.
반면 늘 감정의 기복이 적고 유쾌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작은 일에 휘둘리지 않는 만큼 남의 기분에도 민감하지 못해 무심하거나 둔감하다. 다 일장일단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적당한 것이 가장 좋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늘 상대방에게 왜 좋은 말을 하지 않느냐, 왜 좀 더 다가오지 않느냐는 등 불만을 품곤 하지만, 그전에 얼마나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했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도 너무 감정에 휘둘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영적 부분도 돌아보면 좋겠다. 우리를 좌절시키는 요소들은 좋은 관계를 이간질하고 사소한 일에 목숨 걸게 만드는 외적 공격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만, 때로 기분은 관계의 절반이라 할 만큼 중요하다. 이제 감정이 상하면 솔직하게 말하는 습관을 들이고, 그놈의 자존심 좀 내려놓자. 스스로를 속여가며 억지 명분을 만들지는 말자. 그리고 역지사지로 타인의 기분도 좀 살피고 살자. 편안한 삶, 행복한 관계는 거창한 일에 있지 않다.
▲김재욱 작가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