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10-23 16:54
[2]목회적 관점에서 살피는 죽음이해 및 죽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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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712  

3) 죽음을 가르치는 교회교육

현재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공과에서 죽음을 주제로 다루는 공과를 발견하지 못했다. 호스피스에서 다루는 죽음이나 웰다잉 그룹들에서 다루는 죽음들의 대부분은 그저 죽기 전에, 그 죽음을 주물러 대는 죽음 마사지 수준의 것들이 범람한다. 실제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고민들이 그렇게 깊지 않다. 통증완화를 다루는 수준이다. 또 죽음에 이르기 전에 외로움이나 고독감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정신,신경 분야의 헬스케어 정도이다.
사실 웰_다잉이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큰 헛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 없이 죽는다는 것, 구원의 은총을 경험하지 못하고 죽는 죽음을 “웰_다잉”이라는 이름으로 어루만지고 마사지 하는 격이니 오히려 이게 더 큰 형벌 일 수 있겠다 싶은 것이다. 죽음의 고통이나 두려움, 공포를 통하여 신 앞에 단독자로, 마지막 순간 구도자의 태도를 갖게 하는 기회마져 빼앗는 빈약한 “웰_다잉 체계” 가 대다수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 찾게 될 신에 대한 경외마져 놓치게 되는 의료_기만에 빠질 수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웰-다잉 지도사들은 목회자와 마찬가지고 큰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4) 
장례식과 장례예배의 분별
장로교에서 장례식을 예배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특별히 장례식장에서 드리는 예배는 죽은 자, 이미 영혼이 땅에 없는자를 위해 드려지는 것이 아니다. 장례식장에서 드리는 예배는 산자들을 위해 드리는 예배이다. 장례식 과정에서 드려지는 예배, 임종예배, 입관예배, 출상예배, 하관예배 등등, 이런 이름을 붙여서 드리는 예배들의 문제점을 살피기 바란다. 죽음과 관련하여 드리는 예배 중, 죽기전에 드려지는 임종예배를 뺀 집회에 “예배” 라는 이름을 붙여 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를 테면"유가족을 위한 예배1,2,3" 으로 바꾸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예배란 죽은 자를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기에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3. 기독교에서의 죽음


1)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기반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하여 깊이 있는 통찰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어떤 죽음이었을까? 어떤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발적 죽음” 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동일한 부류로 취급하는 입장이다. 소위 의인이나 열사수준의 죽음으로 치부하려고 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류의 죄에 대한 성부하나님의 내어주심으로 인한 대속적 죽음이다. 고귀한 죽음의 수준을 넘어서는 목적이 있는 죽음, 대속을 위한 죽음인 것이다.
게다가 그리스도의 죽음은 사망을 사망시킨 죽음이다. 죽음을 죽이신 죽음이다. 부활에 이르는 죽음이다. (고전15 55-58)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2) 
구약과 신약에서의 죽음, 조직신학에서의 죽음 
- 나누어 드린 자료 P12-18 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3) 
사망의 기능과 역할
고린도전서에서는 사망이 행하는 활동을 보여준다. 사망을 “없음, 움직이지 못함, 어떤 행위가 중단된 상태”로 이해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사망이 활동하는 존재라는 것을 두드러지게 드러내 보인다. 이를테면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 사망을 활동하는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다. 
계시록 95-6절 에서도 죽음의 격을 발견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그들은 죽고 싶으나 죽지 못하는 고통을 당하게 되는데 이는 죽음이 그들로 부터 멀리 달아났기 때문이다.

4)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바울은 소위 부활장이라 칭하는 고린도 전서 15장에서 자신이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바울이 단언하여 자랑하는 죽음은 어떤 의미의 죽음이라고 생각하는가? (고전1529-35)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30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31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35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5) 
계시록에 나타난 심판과 종말론적 죽음 
계시록은 성경전체에 흐르는 심판과 회복의 이야기가 강한 임팩트로 다가오도록 진술하고 있다. 일곱인, 일곱나팔,일곱천사등등... 세상존재하는 것들의 심판과 불신자들의 심판, 1장에서11장까지 불신유대인의 심판과 죽음,12장부터 20장까지 로마인들에 대한 심판과 죽음,20-22장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전개된다. 자연사나 병사, 또는 다양한 죽음들이 있지만 계시록은 심판에 의한 죽음,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는 인간에 대한 심판의 결과로 죽음에 이르는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결국 궁극에 경험하게 되는 인간의 죽음은 죄와 죄의 결과로 맞이하게 되는 죽음이다. 마지막 죽음에 이르도록 회개하거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자들이 있음을 계시하고 있다.
(920-21절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21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4. 죽음학적 관점에서 본 인간문제

“죽기 전에 지례 죽는다” 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몸의 죽음을 경험하기 전에 마음의 죽음을 먼저 맛본다는 말이다. 실제로 육체적 죽음이 최종적인 죽음이라고 한다면 최종적인 죽음을 경험하기 전에 미리 죽는 것들이 많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비관적으로 정의하는 용어들이 적지 않다. 위험사회, 피로사회, 분노사회, 우울사회 등등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필자는 오늘날의 사회를 “죽음 권하는 사회”라고 명명하여 표현하고 싶다. 사회적 타살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미움, 시기,질투,증오,폭력,소외,왕따,각종 배제..., 이루 말할 수 없는 방식으로 죽음문화가 조장된다.
이 죽음문화의 뿌리는 깊다. 그 역사는 에덴동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3:17-18)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7:15-16) 그 날 이후 지금까지 온 세상에는 사망의 고통이 점철되어 왔다. 인간의 타락과 함께 온 세상에는 가시와 엉겅퀴 효과로 시달린다. 남자들은 쉼이 없는 노동중독과 여자들은 사랑이 아닌 지배와 통제의 열정으로 관계를 망가뜨린다. 죽음문화를 넘어설 때에야 비로서 생명의 신비가 열린다.
타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환경에 대해서 브레인스토밍을 한 경험이 있었다. 우리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점검해 보았다. 성형 부추기는 사회,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광고하는 사회, 약자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사회, 이혼조장, 가정 불필요를 조장하는 사회, 자살로 내모는 사회..., 이러한 죽음문화를 분별하여야 한다. 이러한 악한 문화를 추방하고 없이해야 한다. 복음의 능력이 아니고는 도무지 이 악한 문화, 죽음의 문화를 극복해낼 재간이 없다.

병든 개인주의와 왕따 문화는 인간관계를 처절하게 붕괴시킨다. 결혼의 불필요성을 조장하는 문화, 이혼문화, 성적욕망의 배출구로만 생각하는 동거문화, 청소년들의 유사부부 행위에 따른 성남용문화로 인해 다음세대들의 인성형성에 치명적인 악영향이 증가하고 있다. 절대기준과 절대가치에 대한 해체, 신뢰를 무너뜨리는 정서, 욕설이 난무하는 언어습관, 각종 중독들, 질서와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파괴적인 인간관계, 이웃이 사라지는 아파트 문화, 대화와 소통, 질문과 대답이 없는 무관심, 폭력과 배제를 조장하는 혐오와 게토문화...,
죽음문화가 이 시대를 파괴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4차 산업시대의 도래와 함께 생명문화는 점점 그 위협이 증대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죽음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점검해 보자. 첫째로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 살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둘째로 죽음의 문화에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 
셋째로 외톨이나 은둔자들이 주변에 어떤 식으로 지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넷째로 개인적인 삶을 중요하지만 사유화된 삶, 이기적인 삶은 위험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자극해야 한다. 
다섯째로 동아리 활동이나 취미그룹 활동에 참여하도록 권하고 사회성을 적극적으로 키우도록 지원해야 한다. 
여섯째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민주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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