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에게 필요한 덕목
(미 3:1-12) “1.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2.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3.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4. 그 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가 악했던 만큼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시리라 5.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들은 이에 물 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이런 선지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6. 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어둠을 만나리니 점 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 7. 선견자가 부끄러워하며 술객이 수치를 당하여 다 입술을 가릴 것은 하나님이 응답하지 아니하심이거니와 8.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9. 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 곧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원하노니 이 말을 들을지어다 10.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11.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12.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3. 성경을 전하는 것
예언은 두렵게 하거나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려는 것이 아니다. 예언은 현재의 실천 및 영적인 삶과 관련이 깊다. 예언 자체에 너무 집착해서 현실과 사회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모습이 없게 하라.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고 종말이 가까이 왔다는 주장에 집착하며 현재의 책임을 등한시하지 말라. 또한 미래의 계획이 쓸모없고 저축이나 보험도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음도 없게 하라.
미래에 일어나게 하실 일을 그냥 바라만 보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런 선한 의지도 없는 채 주님의 재림만을 사모하는 운명론적인 태도는 비성경적이다. 미래에 대한 예언과 약속은 현재의 행동에 대한 요청이다. 예언은 현재의 충실한 삶을 낳아야 한다. 성경에 말씀되었으니까 말씀대로 이뤄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보자고 하는 운명론적인 태도를 버리라. 하나님의 확실한 음성을 듣고 확실한 예언을 받은 것이 전혀 행동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되면 안 된다.
하나님의 음성과 섭리와 약속은 의지를 말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한 의지를 촉구하는 것이다. 주전 700년경에 선포된 미가의 예언 설교는 백성들의 회개를 이끌어 내어 하나님은 내리시기로 했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렘 26:18-19). 그것이 하나님이 예언을 통해 있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배워도 그것이 현재의 삶에 선한 동기를 제공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예언의 목적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일치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듣고 이미 내리기로 작정한 벌을 내리시지 않는 경우도 많다. 즉 하나님의 성품(character)은 변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행동(action)은 변할 수 있다. 예언의 말씀을 받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행하기로 이미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지 않고 다른 행동으로 역사하신다. 내가 돌이키면 하나님도 돌이키시고 내가 돌아서면 하나님도 돌아서신다.
성도에게 회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내가 진심으로 돌아서면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새롭게 맞아 주시고 그때부터 새로운 축복의 역사를 펼쳐 주신다. 그런 의미에서 말씀을 대하는 지금이 새로운 축복의 역사를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늘 현재의 시간에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몸과 마음을 바침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축복을 예비하며 살라. <20.9.24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