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롬 13:1-14)
로마서 13장은 종종 권세자들이 자기들의 선악은 돌아보지 않고 악행에도 불구하고 피지배자들이 지배자들에게 복종해야 마땅하다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이 말씀은 첫째, 모든 권세의 최종 권세는 하나님께 있다는 점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물뿐만 아니라 모든 권세까지도 주관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그러므로 모든 권세들은 위에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역자(4(x2), 6)로서 선을 칭찬하고 악을 징계하도록 권세를 위임받았기 때문이다. 권세자들의 한계를 말씀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성경에는 권세가 하나님의 심판의 막대기로 사용된 경우가 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였을 때 앗수르나 바벨론의 왕들을 사용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을 복권시키시고 회복시키시는 도구로 사용된 권세도 있다. 바로 페르시아 왕이 바벨론을 끝장내고 포로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려보내고 성전을 재건하게도 하시기도 했기 때문이다.
둘째,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를 잘 생각해야 한다. 복종이란 말은 순종이란 말과는 좀 다른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 권세가 총칼을 휘두르며 백성들을 철권통치할 때 저항하다가 잡혀 옥에 가거나 죽임을 당할 때 그 권세의 힘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가 있다. 사형을 받기도 하고 옥에 오랫동안 갇히기도 한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을 복종한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복종은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권세의 힘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권세의 악함에 대한 저항 자체를 거부하는 말이 아니다. 권세를 거스른다는 말은 권세가 정상적인데도 무정부 상태를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권세가 심각한 악을 일삼을 때 그 권세는 백성들로부터 정당한 방법으로 혹은 투표로 심판해야 한다.
이 글이 쓰일 로마시대에는 오늘날보다 더 부패하고 심각한 권세가 있었을 것이다. 노예 제도가 그러하다. 노예 제도 자체를 거부하거나 무시하면 그 사회 자체에서 존재할 수가 없다. 오늘날로 볼 것 같으면 사회 제도가 갖는 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냈다. 노예로서 주인에게서 탈출하여 그 권세를 거스르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노예 신분으로서 주인에게 돌아가 주인인 빌레몬의 처분을 받도록 한 것이다. 빌레몬이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으로 관대한 처분을 바라는 마음으로 바울은 그의 제자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부탁했던 것이다. 거기에 권세에 복종하라는 의미와 권세자가 위의 하나님을 두려워하여야 마땅하다는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권세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 권세를 거르스는 것은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 악한 일로 권세를 두려워함,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 등의 말씀은 모두 권세들의 한계가 무엇이며 어떻게 그 권세를 사용하여야 하는지를 말씀해 준다.
오히려 이 본문은 피지배자들이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를 말하기보다는 권세자들이 위에 계신 모든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권세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기록한 말씀이다. 권세는 질서를 위한 것이고 선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는 사상을 강하게 가르쳐 준다.
권세를 가진 자들이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권세를 가지고 간음하기 쉽고, 살인하기 쉽고 도둑질하기 쉽다. 모든 힘이나 권세는 사랑을 가지고 사용해야 함을 말한다고도 볼 수 있다. 탐내는 것도 권세자들에게 하는 말씀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율법을 시행하고 지키도록 위임받은 사람들이 권세자들이다. 그러므로 율법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의미가 사랑을 시행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위치에서든지 권세라는 직책의 힘을 가지고 살아간다. 조금 더 상위에 있고 낮은 위치에 있을 뿐이다.
피차 복종해야 하는 입장에서 살아간다. 높은 사람에게 굴종하고 굽신거리며, 낮은 자에게 갑질하며 살 것이 아니라 자기의 위치에서 위에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는 말씀임을 새기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로 옷입고 사는 삶이다. 상급자나 국가의 권세를 무시하거나 오용, 남용하지도 말아야 하는 것은 위에 하나님께서 주관자로 계시기 때문임을 명심하며 살자.
김영엽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