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按手)란 무엇인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 ( 딤전5:21-22 )
Ⅰ. 이끄는 말
지상교회는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시련과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혼란을 거듭하면서 시들다가도 다시 소생하면서 성장하여 간다. 한국 교회 근대사를 보더라도 지상교회는 신앙적으로 커다란 혼란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진리의 말씀인 성경도 하나이고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도 한 분이신데
(엡4:5-6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신자들의 신앙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남으로써 신자들간의 갈등은 너무도 극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원인을 밝힌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가운데서 안수(按手)에 대한 신자들의 잘못된 관념을 하나 들 수 있겠다.
전통과 교세를 앞세워 허세를 부리는 교권주의자들은 안수가 마치 목사 권위의 상징인 양 허위 선전에 혈안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안수를 구약시대 제사장들이나 왕들이나 선지자들이 받았던 기름부음과 같은 성질의 것으로 오해하여
안수 받은 목사는 제사장이나 왕이나 선지자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그렇게 행세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가 하면, 성령운동 또는 오순절 운동가라고 자처하는 신비주의자들은 안수가 성령의 능력을 주거나 받는 수단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기적을 나타내는 능력의 수단으로 오해하고 있어 온갖 추태를 부리고 있는 실정이다.
손을 한 번 얹어주는데 몇 백만원의 돈을 요구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안수 한번 받기 위해서 산으로 들로 헤매는 허다한 무리가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요즈음 교파를 막론하고 한국 교계에 독버섯처럼 돋아나는 기복주의 신앙자들은 안수를 부자되어 잘 먹고 잘 살고 싶어하는 인간들의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복 받는 비법으로 잘못 알고 있기도 하다.
자기들이 손을 얹고 복을 빌면 복을 받고 저주를 하면 저주가 임한다고 가르치면서 많은 어린 성도들을 유혹하기도 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하여 자기들에게 맹종하도록 이끌어 가고 있다.
(행8:17-25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두 사도가 주의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이와 같은 교회내의 신앙적 혼란은 신자들 개인의 영혼은 물론 한국 교회의 커다란 병폐가 아닐 수 없다.
인본주의와 사이비 신앙운동이 범람하는 상황 속에서 중병을 앓고 있는 한국 교회는 반드시 치료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병의 원인을 하나씩 제거해 나아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Ⅱ. 안수라는 말의 뜻
성경에 나타나 있는 안수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히브리어 쎄 마크 예도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고, 신약에서는 일반적으로 헬라어 ‘에피데쎄오스 테 케이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 단어들은 모두가 손을 머리에 얹는 안수를 표현하는 용어들이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안수를 하는 예들이 여러 번 발견되는데 이것은 모두가 한결같이 ‘전달’한다는 의미를 나타내 주고 있다.
그러나 신ㆍ구약성경에서 여러 차례 시행된 안수들이 같은 내용이나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안수의 목적에 따라 내용과 대상이 달라지기도 하고, 안수의 성질에 따라 내용과 시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이렇게 안수의 목적이나 성질에 따라서 그 내용이나 대상 그리고 시기 등이 다르지만 안수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근본 의미는 한결같이 ‘전달’이라는 내용상의 의미로 하나를 이룬다.
즉 안수는 안수를 하는 자가 안수를 받는 자에게 무엇을 전달하는 의미로 시행된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안수는 복이라든가, 병(病)고침이라든가, 성령 충만이라든가, 권능 등을 받는 신비한 행위로 단순하게 이해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목적과 다양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안수가 그처럼 단순하게 이해되어지고 정리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Ⅲ. 안수의 목적
신ㆍ구약성경에 나타난 안수들은 그 목적이 여러 가지로 다양하다.
첫째는 복의 전달에 있다
구약성경에서 제일 처음 안수에 대한 기록은 창세기에 있는 것인데,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할 때에 머리에 손을 얹고 한 것이다.
(창48:14~ 이스라엘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 맞겨 얹었더라)
그 이전,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축복할 때
(창14:17-20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멕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할 때
(창27:25-29 이삭이 가로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며 그가 마시고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 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에는 안수를 했다는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에게 축복하실 때에 안수를 하신 일이 있다.
(마19:13-15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
이와 같은 안수들은 모두가 복을 전달하려는 데 그 목적을 가지고 있다.
특히 구약 창세기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그 후손에게 전달하는 뜻에서 안수를 했던 것이다.
둘째는 죄책의 전달이다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제사 규례 중에 제물에 안수를 하라는 말씀이 있다.
아론의 아들을 속하기 위해서나
(출29:10 너는 수송아지를 회막 앞으로 끌어 오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송아지 머리에 안수할지며)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레1:4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제물을 드리는 자가 제물의 머리에 안수를 하도록 명령하신 것이다. 이것은 제사장이나 백성의 죄를 제물에 전가(轉嫁)한다는 뜻으로 행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의 안수는 죄책(罪責; 죄에 대한 책임)의 전달이 그 목적이 된다.
셋째는 능력의 전달이다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안수들은 주로 메시야 능력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고 있다.
(막5:23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막5:42-43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 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그것은 대부분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많이 나타나 있고 예수님 자신과 그의 제자들인 사도들에 의하여 행해졌다. 사도들은 메시야의 능력의 대행자(代行者)들이기 때문에 안수를 통한 능력이 나타났다.
(행5: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것은 예수님께서 메시야의 능력을 제자들에게 위임(委任)했기 때문이다.
(막16: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와 같은 신약시대에 예수님 자신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 행해진 안수는 메시야의 능력이 전달되어 여러 가지 기적적(奇蹟的)인 사건이 나타나게 된 것이기 때문에 그 당시의 안수는 메시야의 능력 전달이 그 목적이 된다.
넷째는 은사의 전달이다
신약성경 중 특히 사도행전이나 서신서 가운데 나타나는 안수는 주로 은사들을 전달하려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오순절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지상에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 중에 갖가지 은사를 주어 교회를 자라게 하시는데 사도들을 통하여 성도에게 각각 은사를 맡길 때에 안수를 하도록 하신 것이다.
(행8:14-20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은지라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그래서 사도들이 안수를 하면 성령을 받음과 동시에 여러 가지 은사를 받게 된 것이다.
(행19:6-7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뿐만 아니라 복음 전도자나 집사나 다스리는 자를 세울 때 안수를 하도록 한 것도 성령께서 교회를 세우시는 데 필요한 은사를 각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전달 받게 하시려는 의미인 것이다.
(행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딤전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그러므로 신ㆍ구약성경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안수의 목적은 복의 전달이나 죄책의 전달 그리고 능력과 은사의 전달이 그 목적임을 알 수 있다.
Ⅳ. 안수의 성질
구약이나 신약성경에서 보여주는 안수들의 목적이 다양하듯이 그 성질 역시 단순하지만은 않다. 이에 대한 세심한 이해는 안수는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얻고 결론을 맺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째로 예표로서의 안수이다
예표(豫表)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안수는 대부분 구약성경에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후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안수를 한 경우
(창48:14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는 약속의 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령한 복
(엡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이 택한 백성들에게 주어질 것에 대한 예표적인 사건임을 말해준다.
(갈3:14-16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또한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속죄 제사를 드릴 때 속죄 제물에게 백성의 죄책을 전가하기 위한 안수
(레4:4 곧 그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도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한 백성들의 죄를 사해 주시려고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택한 백성들의 모든 죄책을 대신 담당하게 하여 영원한 제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실 것에 대한 예표적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롬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상과 같이, 구약시대에 복을 전달하기 위해서나 죄책을 전달하기 위해서 시행했던 안수는 모두가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참 것으로 이루실 것에 대한 예표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표적으로서의 안수이다
표적(表蹟)으로서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안수는 대부분 신약성경에 많이 나타나 있다. 구약에서 약속하신 메시야로서의 예수님이나 메시야의 능력을 위임받은 사도들이 능력을 전달할 목적으로 행했던 안수
(눅4:40 해 질 적에 각색 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눅13:10-13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십팔 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행28:7-10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
는 모두가 마리아의 몸에서 출생하여 나사렛에서 자라나신 예수가 구약에서 약속한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는 표적으로서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또한, 특히 사도들이 신약교회 시대에 성령의 은사를 성도들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행했던 안수
(행8:18-19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딤후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도 구약에서 약속하신 메시야로서의 예수님으로부터 메시야의 능력을 부여받은 사도들이 안수를 통하여 메시야의 능력을 나타냄으로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는 표적으로서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표적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안수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행했던 것으로서 신약교회 시대 초기인 계시시대 즉 사도시대 또는 신약성경 기록시대에만 가능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셋째는 의식으로서의 안수이다
의식(儀式)으로서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안수는 사도시대 이후의 신약교회에서 주로 교회 직분을 맡길 때에 시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식으로서의 안수들은 안수 행위 자체가 어떠한 신비(神秘)한 능력이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성도 각자에게 믿음의 분량 따라 주신 은사를 모든 교회 앞에 공적으로 선포하는 의식적 행위에 불과하다.
즉, 사람에게서 안수를 받음으로 교회 직임자(職任者)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은사로 주시는 직임을 받았기 때문에 선배 직임자들이 안수를 통해 그 사실(事實)을 선포한다는 뜻이다.
(행13:2-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Ⅴ. 맺는 말
신ㆍ구약성경에 나타난 안수는 모두가 ‘전달’한다는 의미를 가지면서 그 목적이 다양하고 그 성질 역시 단순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주로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복이나 죄책의 전달을 목적으로 행해진 예표로서의 성질을 가진 안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와서 다 성취되었고, 주로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능력과 은사 전달을 목적으로 행해진 표적으로서의 성질을 가진 안수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시대(계시시대)에만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계시시대 이후의 오늘의 교회 안에는 복이나 죄책의 전달을 위한 예표적 안수나, 능력과 은사의 전달을 위한 표적적 안수는 있을 수 없다.
다만 성령께서 믿음의 분량대로 은사를 따라 맡겨 주신 교회직임을 공적(公的)으로 선포하는 의식적 안수가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의식적 안수는 어디까지나 의식적 안수일 뿐이지, 의식적 안수 자체에 복을 임하게 하거나 성령의 능력을 받게 하는 신통한 능력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 안에서 안수행위를 통해 귀신을 쫓는다거나 병을 고친다거나 어떠한 은사(방언·예언·입신·능력)가 주어진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거짓 영(사단)의 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살후2:8-12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