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오셨으니 그를 믿어 구원을 얻지만, 구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기 때문에 어떻게 구원을 얻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구약성경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많이 하고 있지만 예수님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는다.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었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다.
답부터 말하자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었다.그 근거는 창세기 15장 6절 말씀이 대표적이다.“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도 하나님을 믿어서 의롭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은 구약시대에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은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그런데 이미 구약시대에도 율법을 100% 지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왜냐하면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십계명의 계명들이 신약의 확장된 의미를 포함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살인은 행위의 살인뿐만 아니라 마음의 미움까지도 살인으로 간주된다(요일 3:15).간음도 행위의 간음뿐만 아니라 마음의 음욕까지도 간음으로 간주된다는 말이다(마 5:28).이런 관점에서 율법을 100%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율법을 어길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다.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를 회복했겠는가? 이는 바로 구약시대에 성막/성전을 통한 속죄에 답이 있다.
출애굽기에 보면 십계명은 제20장에 나오고 언약의 책은 이어서 제24장까지 나온다.그런데 십계명과 언약의 책보다 약 3배의 분량에 해당되는 제 25-40장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성막에 대한 이야기이다.그만큼 구약시대에 성막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구약시대 성막의 속죄제와 속건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 용서함을 받았다.
성막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하는 제도이다.제사에 주로 드린 짐승인 어린 양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제물의 피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하고, 중재의 역할을 한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의 사역을 예표한다. 성막/성전 자체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예표한다.
이런 관점에서 구약성경은 예수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고 있지 않을 뿐이지 사실은 예수님의 사역을 그림자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 이를 전문용어로 모형론 혹은 유형론 혹은 예표(typology)라고 칭한다.
실상 구약시대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용서하신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흘리실 보혈을 내다보시면서 용서하신 것이다. 짐승의 피 자체가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가 효력이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은행 용어를 차용하자면 구약시대 제물의 피는 마치 약속어음과 같고 신약시대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현찰지불과 같은 것이다. 구약시대의 약속어음이 유효한 것은 신약시대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보혈이 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 성도들은 속죄제나 속건제를 드릴 때, 미래에 일어날 일을 모르고 그냥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제사를 드린 것이다. 그런데 효력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이다.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를 드린 것은 모두 믿음의 행위들인 것이다. 이 믿음을 보시고 죄를 씻어주시고 의를 회복시켜 주신 것이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도 역시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다. 그 믿음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그 자신 속에 삼위의 하나님으로 계신 분이시기에 예수님도 함께 동참한 사역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