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9-16 08:28
갈라디아서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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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274  

갈라디아서

저자: 갈라디아서 1장 1절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의 저자임을 분명히 나타냅니다.


저작 연대: 갈라디아서는 주후 49년이 지난 직후 즈음에 쓰인 서신으로서 신약성서의 첫 번째 책일 가능성이 큽니다.


기록 목적: 갈라디아 교회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이 이 교회에 편지를 쓴 목적은 그들에게 믿음 안에서, 특히 모세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을 확증해 주기 위함입니다.


갈라디아서는 그 지역의 교회들이 신학적인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율법주의적 유대인들, 곧 유대교주의자들은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핵심 진리를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유대교주의자들은 이방인들이 구원 받기를 원한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먼저 유대교로 개종해야 그 다음에 그리스도인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이단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것을 알게 되었고, 이에 유대교주의자들이 추진하고 있던 복음의 타락을 막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강조하면서 이 서신을 작성했습니다.


핵심 구절: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4:5-6,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요약: 우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는 영적인 자유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구약의 율법 지시에 묶여있지 않습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복음을 바꾸려고 시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하는 자를 철저하게 정죄합니다(갈 1:8-10). 그는 자신의 사도 자격증을 제시하면서(갈 1:11-2:14) 의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온다고 강조합니다(갈 2:21). 갈라디아 사람들은 그들의 자유를 굳게 지키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아야”(즉, 모세 율법으로 돌아가지 말아야)(갈 5:1)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죄의 본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자유는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갈 5:13, 6:7-10). 그리스도인의 삶은 육신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갈 5:16-18). 육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갈 2:20). 결과적으로 성령님은 신자의 삶에서 그분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갈 5:22-23).


결국, 문제는 사람이 할례를 받았는지가 아니라 "새 피조물"이 되었는지의 여부입니다(갈 6:15). 구원은 성령의 역사이며 우리는 거듭나야 합니다(참조, 요 3:3). 할례와 같은 외부 종교 의식은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영역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연결: 갈라디아서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 곧 구원하는 은혜는 구원할 수 없는 모세의 율법과 나란히 놓입니다. 유대교주의자들은 의롭다함을 얻기 위한 근거로써 모세의 율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하였고, 그들은 초대 교회에서 유명했습니다. 심지어 베드로조차 일시적으로 그들의 속임수에 빠져 들었습니다(갈 2:11-13). 갈라디아서를 구약성경과 연결시키는 주제는 율법과 은혜에 관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율법은 우리를 의롭게 할 수 없다(갈 2:16), 신자는 율법에 대해 죽었다(갈 2:19), 아브라함은 믿음에 의해 의롭다함을 얻었다(갈 3:6), 율법은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라 그분의 진노를 가져온다(갈 3:10),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다(갈 5:14) 등이 있습니다. 신자들은 하갈이 아닌 사라의 영적인 자녀들입니다. 즉, 우리는 자유한 여인의 자녀이지 노예의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의 노력으로 생긴 이스마엘보다는 약속의 아들 이삭과 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갈 4:21-31).


갈라디아서와 야고보서는 두 측면에서 기독교를 다루며 서로 보완합니다. 갈라디아서는 의로운 삶을 만들어내는 은혜의 복음을 강조합니다(갈 3:13-14). 야고보서는 믿음을 증명하는 의로운 삶을 강조합니다. 두 서신 사이에 충돌은 없습니다. 야고보 역시 복음을 통한 거듭남을 강조하며(약 1:18), 갈라디아서는 마지막 두 장을 사용하여 ‘오직 은혜’의 교리를 실제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에 적용합니다.


적용: 갈라디아서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3장 11절에서 발견됩니다.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우리는 이 진리 가운데 확고하게 서야 합니다. 율법주의와의 타협하거나 구원을 위해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를 섞는 것은 이단으로 이어집니다. 만일 우리가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면 예수님은 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갈 2:21). 우리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려고 노력한다면 이는 은혜를 헛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요 3:16, 엡 2:8-9)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삶 – 날마다, 순간마다 – 역시 믿음에 의해, 믿음을 통해 살아갑니다(갈 2:20). 그 믿음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며 행위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참조, 엡 2:8-9)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행하신 일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과 영적인 훈련(성경 연구, 기도, 순종 등)을 적용함으로 우리의 믿음 가운데 성장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며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정체는 삶의 열매로 나타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16)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증거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안에 있는 구원하는 믿음을 기반으로 하여 그 위에 삶을 세우려고 부지런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와 다른 사람들을 반영하면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것"(마 5:16)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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