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성숙의 단계들 ▲이규현 목사 (수영로교회)
유아기에서부터 장년기에 이르는 단계가 있듯이 영적 성장에도 단계가 있다. 성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어린 아이로 시작한다.
요일 2:12-14절을 보면 아이, 청년, 아비가 나온다. 아이는 돌봄이 필요한 단계다. 태어난 순간 아이는 집중적인 돌봄을 받아야 한다.
엄마의 눈물겨운 돌봄이 없다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어린 아이는 부모에 의해 철저히 의존된 존재다. 유아기의 단계는 부모로부터 공급받는 것에 의존한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 아이의 단계는 자기중심적이다. 엄마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운다. 요구하는 것도 많다.
바울은 어린 아이의 일을 벗으라고 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엡4:14절)”
어린 아이의 특성은 ‘불안정’이다. 늘 흔들리는 모습이다. 뿌리가 얕다. 쉽게 속임수에 넘어간다.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다. 진리와 거짓에 대해 분별을 하지 못한다. 영적으로 어린 아이들은 이단의 유혹에 쉽게 노출된다.
양들을 노리는 이리떼들이 많다. 자신의 영혼을 지킬 수 있는 준비가 덜 된 상태다. 공동체가 보호막이 되어 주어야 한다. 이때는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상태다.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안정감을 찾지 못하고 다른 것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영적으로 어린 사람들은 기댈 영적 거인을 찾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찾으려고 한다. 어릴수록 사람에 대한 의존성이 강하다. 무엇인가를 행함으로 안정감을 얻으려고 한다. 성경읽기, 묵상, 기도 등을 위해 노력을 하지만 어느 순간 무너진다. 실패의식에 빠지고 힘들어한다. 열심히 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정죄감에 사로잡힌다.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하지만 좌절을 맛보고 그만두는 일이 많다. 내적 견고함이 없기 때문에 세상의 풍조에 떠밀려 다닌다. 아직 세상적인 형식과 유행에 민감하다. 세상의 것들로 안정감을 얻거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다. 돈, 인기, 외모, 직업 등이 여전히 매력적인 주제들이다.
어린 아이의 모습을 벗어나려면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떤 단계에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으면 아직 어린 아이 단계다. 정체성은 그리스도안에서 풀어야 한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요15:15)”라고 하셨다.
종에서 친구로의 변화다. 새로운 관계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하나님의 포이에마, 걸작품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신분은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17)”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맺어졌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이 모든 구절들을 통해 신자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더 이상 자신에 대해서 무가치하게 여기면 안된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에 대해서 절망할 이유가 없다. 실패를 했다고 낙심할 이유가 없다. 작은 일에도 좌절을 자주 느낀다면 그 뿌리가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 욕심일 가능성이 높다. 무엇인가를 성취함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은혜가 아닌 자신의 힘으로 얻어내고자 한다면 스스로 공허한 광야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자기중심적인 욕심의 뿌리를 제거하고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조금씩 내려야 비로소 어린 아이의 모습을 벗어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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