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건강
- 이왕재 박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보건의료기술포럼 대표)
수 십년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내내 가졌던 의문은 과연 신앙생활을 하면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 보다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라는 아주 막연한 의문이었습니다. 자칫 잘못 들으면 하나님을 믿으면 그 대가로 건강하게 살게 해 주신다는 다소 기복적인 신앙관으로 이야기가 빠지기 쉬우나 오히려 그러한 기복적 신앙에서 벗어나 원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자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해 우리가 얻는 것은 썩어 없어질 육신에 속한 일이 아니고 영원한 하늘나라를 선물로 받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차원 높은 선물이라는 것을, 결국 우리는 그저 믿기만 하면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는다는 놀라운 소식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래도 믿는 행위가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줄까 하는 점에 대해 의학적인 접근을 해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시기를 원합니다. 저처럼 모태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믿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교과서적인 답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죄인이며 우리의 씻을 수 없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 흠도 죄도 없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그리고 사흘 뒤에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다. 믿음이란 바로 그러한 사실을 우리 마음 속에 확실히 믿고 단순히 그러한 믿음으로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 초신자라도 기독교 교리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이러한 대답을 하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을 줄로 믿습니다. 이 교과서적인 믿음의 정의에 따르면 믿음이란 '종교적 신념(religious belief)'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신념이 위(하나님)를 향한 신념이기 때문에 우리는 종교적 믿음을 일명 신앙(信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종교적이 아니더라도 믿음 혹은 신뢰감은 사람에게 평안함을 줍니다. 어린 아이들이 재미있게 막 놀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보며 엄마나 아빠를 찾아서 없을 때 즉시 울음을 터트리게 마련입니다. 자기를 지켜줄 믿음 혹은 신뢰의 대상이 보이지 않음으로 어린 아이의 마음 속에는 평안함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계시다는 확실한 믿음이 우리에게 있을 때야 그 평안함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에 평안함을 잃은 상태를 우리는 불안한 상태라고 합니다. 의학적으로 사람이 불안함을 느낄 때 일어나는 변화를 살펴보면 마음의 평안이 우리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몸을 움직이는 체계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즉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운동체계, 소위 뼈와 함께 붙어 있는 근육에 의한 운동체계가 그 첫 번째이고 우리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불수의적 운동체계가 그 두 번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안함과 관련하여 작동되는 운동체계는 후자의 불수의적 운동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운동체계를 좀 더 유식하게는 자율신경계라고합니다.
자율신경계는 에너지를 방출하려는 방향의 운동을 추진하는 교감신경계와 에너지를 어떻게 해서든지 보존하게 하려는 부교감신경계로나눌 수 있습니다.
쉽게 예를 들면 심장의 운동은 우리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없는데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평생을 움직이는것이 심장입니다. 불안해지면 교감신경계의 자극에 의해 심장은 저절로 빨라집니다. 즉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불안의 원인으로부터 도망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산소가 필요하고 이 산소는 심장을 통해 공급되는혈액에 의해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또 불안해지면 말초혈관의 평활근은 수축하여 혈관 내경이 좁아지게 함으로 혈압을 상승시켜 원활하게혈액이 공급되게 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기관지 평활근은 반대로 확장되어 많은 공기가 호흡을 통해서 유입될 수 있도록 호흡기도를 넓힙니다. 눈동자는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마음껏 확장됩니다. 불필요한 체액의 분비를 줄인다는 의미로 입 속에서는 침이 마르고 손과 발에서는 진땀이 납니다.
소화기 내에서는 가급적이면 많은 양의 에너지원을 흡수하기 위해 소화기의운동성을 떨어뜨립니다. 즉 음식물이 소화기관을 통과하는 속도가 늦어지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많은 에너지원으로부터 도망갈때 사용되어 질 에너지원을 모으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물주이신 하나님께서는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가 서로 적절히 조화되어 사람의 삶이 보다 나아지도록 이러한 정교한 장치를 우리 몸 속에 장착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는 무언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감신경이 우세하게 작동되어야만 하는 상황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쓸데없이 그것도 너무 자주 심장 박동이 증가되고 말초혈관의 수축에 의한 고혈압이 야기되는 상황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교감신경의 지배가 우세한 나머지 소화기관이거의 막힌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운동을 멈추게 됩니다. 시시각각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각종의 스트레스들이 쉼없이 우리를 교감신경의 지배 속으로 몰아 넣고 있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교간신경의 작용을 매게해주는 물질인 아드레날린은 그 자체가 심하게 면역체계를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암에 대해서 무방비하게 만들며 감염에 대해서 또한 대해서 또한 무방비하게 우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따금 발휘되는 교감신경계의 작용은 우리를 늘 새로운 상태에 있게 하지만 너무나 자주 그것도 지배적으로 우리를 교감신경계 아래로 몰아 넣는 것은 결코 건강에 도움이 되지 못함을 보게 됩니다.
어차피 우리는 다원화 사회, 스피드를 요하는 복잡한 시대, 쉽사리 풀기 어려운 문제들과 직면하면서살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즉 항상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곁에 서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언제나 쉽사리 교감신경계의 지배에서 벗어나 부교감신경계와 교감신경계가 적절히 조화된 상태인 평안의 상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굳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의 "항상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들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인해서 항상 기뻐하고 확실한 믿음을가지고 드리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는 삶을 사는 자에게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적절한 조화에 의해서 우리 몸이 최상의 조건 속에 놓이게 되는 것을 실제 삶 속에서 체험하게 됩니다.
결국 먼저 믿는 자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확실한 믿음을 통해서 늘 마음에 평안을 얻게 됩니다. 마음의 평안은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의 조화를 유도하여 우리 몸으로 하여금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우리 몸을 공격하게 하는 어떠한 요소들로부터 우리 몸을 지켜내는, 소위 가장 건강한 상태를 선물로 받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실한 믿음을 통해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복외에도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건강의 복도 얻을 수 있다 하니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