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8-28 09:29
성령의 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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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8,178  

교회에서 사용하는 매력적인 말이 있습니다. 바로 ‘은사’라는 용어입니다. 은사를 히브리어로 투브(בוט)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카리스마(χάρισμα)라고 하며, 영어로는 spiritual gift(신령한 선물)라고 합니다. 은사(恩賜)를 정의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에게 값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로운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투브라는 말이 가장 최초로 사용된 곳은 창세기 24:10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짝을 구하기 위해 종 엘리에셀에게 예물로 좋은(투브) 것들을 열 필의 약대에 실어 메소포타미아로 보냅니다. 여기서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좋은 선물을 보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카리스마란 말이 가장 최초로 사용된 곳은 로마서 1:11입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을 간절히 보기 원하는 것은 그들에게 어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그들의 믿음을 강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은사는 독점물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나눠 가져야 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을 흔히 ‘은사장’이라고 합니다. 은사에 관하여 아주 자세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은사의 지배원리, 은사를 주시는 이유, 은사의 종류, 은사 부여의 특징, 은사의 필요성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은사의 지배원리는 이렇습니다. 한 분 성령께서 여러 가지 은사를 나눠 주십니다. 한 분 주께서 여러 가지 직임을 부여하십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이유는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유익이 아닙니다. 신앙공동체의 유익입니다. 그래서 은사를 받은 자는 교회에 덕을 세워야 합니다. 물론 교회에 덕을 세우면 스스로에게도 당연히 유익이 됩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점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무슨 부흥회나 정기집회 홍보를 위하여 신문광고나 전단지 등을 만들 때 자신이 받았다는 수많은 은사를 열거하고 간증 사례를 열거하면서 그것이 마치 자기 고유의 능력인양 오해할 수 있는 문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영광은 간곳이 없고 자신의 능력만 집중 부각시킬 때의 위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큰 경고가 될 것입니다.1)

은사는 성령께서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십니다. 이것은 은사의 부여권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말합니다. 은사는 성령을 통하여 주어지기 때문에 성령께서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다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만, 성부께서 성자로 말미암아 상령을 통하여 주신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은사는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은사사역을 하는 여러 현장을 떠올리게 됩니다. 전문적인 은사 사역자들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훈련을 시킵니다. 은사에 관한 성경 말씀들과 더불어 각 은사에 관한 실제 훈련을 시킵니다. 능력 있는 사역자들의 지도에 의해 나타나는 가장 보편적인 은사는 방언입니다. 그러나 방언은 예배, 찬송, 합심기도, 개인기도, 집회 등에서 흔하게 터지는(‘터진다’는 표현이 부적절하긴 하지만) 현상이기 때문에 꼭 전문 사역자의 지도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라 특정 지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과문한 탓이긴 하지만, 통변의 은사의 경우, 능력 있는 사역자가 희망자를 앞으로 불러내어 통변을 하도록 인도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의해 통변의 은사를 받게 되었다는 확신을 가진 바는 아직 한 번도 없습니다. 예언의 경우, 훈련을 받을수록 정확도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은사는 무슨 능력 있는 사람의 줄기를 타고 흐른다는 말도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나는 사람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훈련과 연습을 통하여 전수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저로서는 수긍이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고린도전서 12:11의 말씀을 상고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은사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는 이런 은사가 필요하고 저 사람에게는 저런 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시고 그 사람에게 알맞은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주도적으로 무슨 은사를 나눠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런 점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눅 18:7)고 하셨으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면 필요한 은사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도 하나님의 뜻대로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주)

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고린도전서 12:8-10에는 아홉 가지의 은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 먼저 언급된 은사는 ‘지혜(智慧)의 말씀’(로고스 소피아스, λόϒος σοφίας)입니다. 지혜만이 아니라 말씀을 함께 언급하고 있으므로 이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지혜는 미련한 것입니다(고전 1:20). 그러나 이 은사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에 속한 것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며, 예수님과 관련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시며(고전 1:24),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셨습니다(고전 1:30). 이 은사는 사람의 직관을 통하여 작용하며, 그 비범성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칼빈은 이것을 “감추어진 것을 통찰력을 통하여 더 은밀한 비밀과 고차원의 본질까지 깨닫는 것”1)이라고 주석하였습니다.

둘째는, ‘지식(知識)의 말씀’(로고스 그노세오스, λόϒος ϒνώσεως)입니다. 지혜와 마찬가지로 지식도 말씀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학습이나 경험을 통하여 얻는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것”2)이라는 칼빈의 주석은 너무 모호하고 간결하다는 느낌입니다. 이 은사를 받으면 성경의 말씀들이 훨씬 빠르고 분명하게 깨달아집니다. 신기하게도 읽고 들은 말씀이나 기억한 성경 구절들이 필요한 때에 꿴 구슬처럼 연결되어 기억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흔히 “성경이 열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책을 많이 저술할 수 있게 되고, 성경을 체계적으로 잘 가르칠 수 있게 되며, 심방 때 미리 말씀을 준비하지 않았는데도 그 상황에 가장 합당한 말씀이 떠올라 전함으로써 많은 은혜를 끼치게 되는 경우 등도 이 은사의 능력 때문입니다.

세 번째, ‘믿음’(피스티스, πίστις)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믿음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을 얻는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믿음을 말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습니다. 유다서 1:3에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믿음의 도’는 믿음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셔야 믿어지게 되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확신의 믿음입니다. 믿음의 은사는 후자를 가리킵니다. 크리소스톰은 이 은사를 “기적에 관계된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은사를 받으면 강력한 에너지로 작용하여 위대한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3:2의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는 말씀도 우리가 새겨들어야 하겠습니다.

네 번째, ‘병 고치는 은사’(카리스마타 야마톤, χαρίσματα ἰαμάτων)입니다. 한자로 신유(神癒)의 은사라고도 합니다. 각종 질병이나 부상을 초자연적으로 치유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능력을 주신 것을 말합니다. 경험적으로 볼 때 치유는 다양하게 이루어집니다. 병이 있는 사람의 믿음과는 무관하게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해 낫는 경우도 있고, 사역자와 병자 상호간 믿음과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 낫는 경우도 있으며, 병자의 믿음은 다소 부족할지라도 사역자의 강력한 은사에 의해 낫는 경우도 있습니다. 병이 나았다고 해서 다시는 재발하지 않거나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은사에 의한 치유는 종말론적 구원의 은혜의 일부이며, 복음을 증거하는 수단으로서의 표적입니다.

다섯 번째, ‘능력 행함’(에넬게마타 뒤나메온, ἐνερϒήματα δυνάμεων)의 은사입니다. 병 고침 이외 마귀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기사와 이적을 일으키는 능력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실천적인 능력입니다. 병 고치는 은사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뤄지며, 능력을 받은 자의 믿음과 기도가 동반되어 유지되고 역사합니다. 칼빈은 이것을 “마귀를 대적하며 또한 위선자들을 축출하는 능력”3)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섯 번째, ‘예언함’(프로페테이아, προφητδία)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말미암아 아는 것으로 지식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선견자, 나비איבנ)들에게 직접 말씀을 입에 넣어주시거나 환상을 통하여 미래의 사건을 알게 하셨습니다. 아직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던 초대 교회 당시에도 제한적으로 나타났습니다(행 19:6 ; 20:23). 그러나 성경이 완성된 지금은 성경이 곧 완성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요 10:35 ; 딤후 3:16,17 ; 고전 4:6 ; 계 22:18,19). 오늘날의 예언은 대언적(代言的) 예언으로써 성도에게 직면한 상황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책망과 회개, 위로와 권면, 소명과 약속, 소망 등의 성격을 띱니다. 그러므로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직통계시를 받은 말씀이다”고 말한다면 이는 잘못된 표현이며, 그렇게 주장하고 받아들이기를 강요한다면 이단으로 취급받게 됩니다. 칼빈은 이를 “하나님의 은밀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계시하시는 유일하고 뚜렷한 은사”4)라고 하였습니다.

일곱 번째, ‘영들 분별함’(디아크리세이스 프뉴마톤, διακρίσεις πνευμάτων)입니다. 숨은 죄악을 판단할 줄 아는 초자연적인 은사 또는 사단의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하는 능력의 은사를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거짓 교사들과 이단들이 활개치고 있습니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더욱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사단도 환상, 환시, 환청, 환감, 방언, 거짓 예언, 신유 등의 신비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영적 현상이 성령의 역사인지 악령의 역사인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만약 이런 분별력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차라리 신비체험을 하지 않는 것이 신앙에 더 유익합니다.

여덟 번째, ‘각종 방언 말함’(게네 글롯손, ϒένη ϒλωσσών)입니다. 방언은 본래 성령께서 주시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하나님께 영으로 찬양하거나 기도하는 말을 가리킵니다(행 2:4 ; 10:46 ; 고전 14:2,14,15). 관점에 따라 다르겠으나 방언에는 각기 성격이 다른 세 종류의 방언이 있다고 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것과 같은 언어방언이 있고, 사도행전 10장과 19장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표적방언이 있으며, 고린도전서 12장이나 14장에 나오는 것처럼 신앙에 덕을 세우기 위해 주시는 은사방언이 있습니다. 오늘날 은사방언은 매우 보편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홉 번째, ‘방언들 통역함’(헬메네이아 글롯손, ἑρμηνεία ϒλωσσών)입니다. 방언의 은사와 연관되어 나타나는데, 이 은사는 성령의 감동으로 방언의 내용을 즉각적으로 입술로써 우리말로 말하게 되거나 속에서 직관적으로 깨달아져서 우리말로 통역하여 말하게 됩니다. 통역의 헬메네이아는 번역(translation)의 의미가 아니라 해석(interpreting)임을 유념해야 합니다. 방언 통역은 다른 사람의 방언을 대신 통역해 주는 경우도 있고,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방언을 한 후 통역을 통하여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은사는 방언의 은사만큼 보편적이지 못한 듯 합니다.

 

고린도전서 12:8-10에 기록된 아홉 가지 은사 외에도 바울 서신에는 은사에 대한 다양한 목록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동일한 서신인 고린도전서 12:28에는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 병고치는 은사, 돕는 것, 다스리는 것, 각종 방언의 여덟 가지로 나열하고 있고, 13:1,2에는 방언, 예언, 지식, 믿음의 네 가지를 들고 있으며, 13:8에는 예언, 방언, 지식의 순서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11에는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의 다섯 가지를 들고 있고, 로마서 12:6-8에는 예언, 섬김, 가르치는 일, 권위함, 구제, 다스림, 긍휼을 베품 등의 여덟 가지 항목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어떤 항목을 열거할 때 중요도에 따라 가치가 가장 높은 것부터 가치가 덜한 순서로 배열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위에 예를 든 항목들은 그 역할과 사역이 다른 것이며, 이를 동시에 말하거나 쓸 수 없기 때문에 편의상 그렇게 열거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성령의 은사가 매우 다양하고 포괄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병고치는 은사나 능력 행함의 은사처럼 신비한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인가 하면, 목사나 교사처럼 직임을 가리키기도 하고, 방언처럼 현상 그 자체를 일컫기도 하며, 구제나 섬김처럼 봉사 행위를 뜻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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