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7-3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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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편 일본 군국주의 통치하에서의 교회의 시련
황국식민화정책 : 신사참배, 동방요배, 황국신민서사, 창씨개명, 일본어상용등의 한민족말살정책을 통해 전 국민의 일치성과 한민족을 정신적으로 완전히 일본화하려는 정책이다. 기독교학교에 대한 억압 : 일제는 신사참배는 종교적의식이 아니고 국민 한 사람으로서 국가에 대한 의무로 수행하는 종교성이 없는행위라고 역설하였다. 각급학교에 신사참배를 강요함으로 기독교학교를 굴복시키려 하였다. 결국, 숭의중, 숭의여중 교장인 매쿤과 스눅크는 미국으로 추방되었고 1937년 이들 학교는 폐교신청을 하였다. 북장로교회, 남장로교회의 학교들은 모두 신사참배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 가졌으므로 각급학교를 폐쇄하였다. 교회교회지도자들의 굴복 : 로마 가톨릭은 1936년 종교행사가 아닌 애국적행사이므로 허용한다고 했고 이어 안식교, 성결교회, 구세군, 성공회, 감리교회 까지모두 참배를 결의했다. 장로교회의 굴복 :친일파 김일선 목사는 평북노회장이 되면서 신사참배를 결정했고 9월 총회까지 23개 노회 중 17개 노회가 굴복했다. 1938년 총회에서 일제는 반대하던 주기철, 채정민, 이기선, 김선두목사등을 투옥시키고 경찰의 위협속에 회장에 의해 불법적으로 선포되었으니 감옥에 가기 두려워 신앙의절개를 꺽고 우상앞에 절하는 애처로운 장로교회의 변절이 시작된 것이었다.
신사참배 거부운동 : 신사참배에 거부한 신앙인들이 2천명에 이르고 감옥에서 순교한 분들이 50여명 되었으며, 폐교된 교회만도 200여곳이 되었다. 평양 장로회신학교는 이사장 방위량, 교장 나부열 등 선교사들의 강경한 입장에 따라 폐교되는 운명을 맞아야 했다.
주기철 목사 : 신사참배의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는 그는 김익두 목사의 집회에서 중생의 체험을 한 후 신학을 했다. 1938년 2월 신사참배를 반대하므로 검거당하였고 그는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키고 일사각오로 싸우다 죽는 길을 택하였다. 그후 노회 명부에서 제명처분 되었고 산정현교회는 폐쇄되었다. 옥중에서 온갖 고문을받으며 5년 수개월을 보낸 주목사는 1944년 47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품으로 갔다.
박관준장로 : 기독교인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진정서를 작성하였고 13차례나 총독을 만나려고 했으나 실패한 후 안이숙을 대동하고 일본에서 정부 인사를만나 설득하였다. 그러나 아무 소득이 없자 일본 제국의회에 유인물을 살포하여 체포된 후 옥중에서 순교의 관을 썼다.
제15편 교회의 마지막 변절 교회의 친일행각 : 1939년 종교단체법을 만들어 각 도시에 한 교회만 허용하고 신책 설치, 국미의례 및 수탈과 부역을 강요하였다. 감리교는 1940년 10월 일본정신의 함양, 일본적 복음을 결의하였다. 1942년 교회수가 750개 감소했고 교인수도 76,747명이 줄었다. 9월에는 전국장로교회가 국방헌금을 모은 돈으로 비행기1대, 병기 2정을 사서 헌나하기도 했다. 일제는 찬송가에 제재를 가했고 사도신경도 금지시켰고 예배5분전에는 천황의 사진에 요배를 하고 출정장병을 위한 기원, 황국식민서사를 한 후 예배를 시작하였다. 일제는 결국 기독교회 파괴 공작을 노골화하여 작은 교단들을 해체시켰다.(성결교, 안식교, 성공회등)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주권사상, 재림설, 반정론 및 평화사상, 극제적 제휴둥의 이유로 군소교단을 해체시켰다. 혁신교단 : 전쟁 수행을 원활히 하기위해 장, 감이 통합하여 새로운 교단을 만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혁신교단이다. 또한 일본은 1941년 30여개에 이르는 교파를 통합하여 하나의 교회로 합동을 이루었다. 교회병합에 의해 없어진 예배당과 건물로 인해 생긴 돈은 모두 국방헌금로 전환되었다. 제16 해방후의 한국교회 1946. 9. 경남노회에서 고려신학교 설립(박윤선, 한상동 목사) 한상동 목사 경남노회 탈퇴 1947. 4. 조선신학교 학생 51명이 김재준 교수는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진정서를 총회에 제출 1948. 2. 박형룔 고려신학교장 사임 1951. 한국신학대학 문교부로부터 대학인가 총회신학교 개교, 총회에서 조선신학교의 합법성 부인 고려신학교파 소위 고려파 장로회 분리 1953 조선신학교파 기독교장로회 분립
1955 감리교에 전밀라 목사 안수로 한국 최초의 여목사 탄생
1959. 9. 장로교 통합, 합동 양파로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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